* 섬진강 31 - 김용택
봄볕에 마르지 않을 슬픔도 있다.
노란 잔디 위 저 타는 봄볕, 무섭다. 그리워서
몇 굽이로 휘어진 길 끝에 있는 외딴집
방에 들지 못한 햇살이 마루 끝을 태운다.
집이 비니, 마당 끝에 머문 길이 끝없이 슬프구나.
쓰러져 깨진 장독 사이에 연보라색으로 제비꽃이 핀다.
집 나온 길이 먼 산굽이를 도는 강물까지 간다.
강물로 들어간 길은 강바닥에 가닿지 못해
강의 깊은 슬픔을 데리고 나오지 못한다.
봄볕에 마르지 않는 눈물도 있다.
바닥이 없는 슬픔이 있다더라.
외로움의 끝, 강 끝이 너를 부르면 내가 다 딸려간다.
바람의 끝에서 문득 나는 새여.
속으로 우는 강물이 땅을 딛지 못하는구나.
목줄이 땅기는
사랑이 없다면, 강물이 저리 깊이 타들어갈 리 없다.
집이 왼쪽으로 기울었으나,
나는 눈물이 새는 집 뒤꼍에 가서 하늘을 본다.
그리움을 죽이며
바닥없는 슬픔을 깊이 파는
강물 소리를 나는 들었다. *
* 김용택시집[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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