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팽이의 생각 - 김원각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밖에 안 보여
뒤에 가던 달팽이가 그 말을 받아 말했다
걱정 마 그것들 모두
지구 안에 있을 거야 *
* 남해 보리암에서
소원 따위는 없고,
빈 하늘에 부끄럽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그리움 되지 못한 몸
여기 와 무슨 기도냐
별 아래 그냥 취해 잤다 *
* 한 몸
행복과 불행은 한 지붕 두 얼굴
불행을 쫓아내면 행복도 따라간다
두 가닥
잘 꼬인 새씨줄
마음 단단히 묶는 법 *
* 외상값
이 씨 구멍가게 외상 술값 갚은 날
뒷짐 지고 마당에 나와 쳐다보는 별빛이여
이 값은 얼마나 될까
오 년째 외상인데 *
* 민박
산 속 허름한 집 방문 열고 들어서니
메뚜기 한 마리가 먼저 와 쳐다보네
반갑다
나도 혼자다
숙박비는 내가 낼게 *
* 별곡
법당에 날아든 참새, 부처 어깨에 앉았다
그래, 중생은 다 오라 부처는 미소짓고
주지는 장삼을 흔들며 훠이 훠이 내쫓고 있다. *
* 내 사랑은
꽃 피는 봄밤에도 낙엽 지는 가을에도
그대에게 보내는 사랑 시 한 편 못 썼네
내 사랑 상처가 많아서
생각 끝이 아파서 *
* 달 도둑
도둑이 창에 걸린 달 그냥 두고 갔다며
료칸*이 빈방에 앉아 바라보던 둥근 저 달
훔친들
둘 곳 있겠냐
그래서 그냥 갔나보다
*료칸(良實)-일본 선사, 하이쿠 시인
* 김원각시집[달팽이의 생각]-책만드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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