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송이 꽃 - 도종환
이른 봄에 핀
한송이 꽃은
하나의 물음표다
당신도 이렇게
피어 있느냐고
묻는 *
* 아침이 오다 - 이시영
방금 참새가 앉았다 날아간 목련나무 가지가 바르르 떨린다
잠시 후 닿아본 적 없는 우주의 따스한 빛이 거기에 머문다 *
* 부녀 - 김주대
아르바이트 끝나고 새벽에 들어오는 아이의
추운 발소리를 듣는 애비는 잠결에
귀로 운다 *
* 서풍이 되어 - 김수복
내 모든 걸 너에게 바친다
내 말의 뿌리도
내 말의 흙도
내 말의 메마른 가슴도
내 말의 풍요한 사랑도
그 목을 바친다
꽃을 피우지 않고 바람이 되어 바친다
재를 피워 다시 꽃을 바친다 *
* 절망 - 김성규
꽃들은 왜 하늘을 향해 피는가
그리고 왜 지상에서 죽어가는가 *
* 금란시장 - 함민복
좌판의 생선 대가리는
모두 주인을 향하고 있다
꽁지를 천천히 들어봐
꿈의 칠할이 직장 꿈이라는
쌜러리맨들의 넥타이가 참 무겁지 *
* 운장암 - 공광규
풀 비린내 푸릇푸릇한 젊은 스님은
법당 문 열어놓고 어디 가셨나
불러도
불러도
기척이 없다
매애
매애
풀언덕에서 염소가
자기가 잡아먹었다며
똥구멍으로 염주알을 내놓고 있다. *
* 그 - 정희성
저 벼락을 보았느냐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살던 그가
살았던 적이 없는 사람처럼 죽었다 *
* 그믐께 - 이세기
고둥 뿔둑을 먹은 겐지 초저녁 앙앙 아이가 운다
민박집 할매가 배앓이에 즉효라는 양귀비술을 한술 떠와
아이에게 먹이는
생소라 올라오는 밤이다 *
*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창비시선400 기념시선집,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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