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에서 며칠 - 김용택 * 산중에서 며칠 - 김용택 내가 온 곳은 하루가 멀다 하게 눈이 오고, 눈이 오면 산길이 먼저 하얗게 드러났다가 먼저 녹았다. 길은 외길로, 산을 넘는다 눈 위로 얼굴을 내민 작은 돌멩이 얼굴이 젖어 있다 내가 보기에, 숲은 날마다 가만히 있다. 어제 본 소나무와 너도밤나무와 박달나무.. 김용택* 2009.08.27
구이 - 김용택 * 구이 - 김용택 산자락마다 꽃들이 흐드러집니다 다가가서 바라보면 어지럽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아찔합니다. 까만 가지 끝에 핀 꽃일수록 아슬아슬 더 붉고 꽃빛은 숨이 턱에 찹니다. 이러다가 자지러지겠어요. 이러다가는 저 꽃이 생사람 잡겠어요 저 꽃빛에 홀려 따라가다가는 .. 김용택* 2009.08.27
폐계 - 김용택 * 폐계 - 김용택 강추위가 와도 강물은 얼지 않았다 강추위가 와도 강물이 얼지 않은 것은 강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며 비 쌍피로 비 띠를 때리며 큰집 형님은 이러면 손핸디, 하며 패를 거두어간다 벌써 칠피다 뒷산 밤나무에는 익지 않은 밤송이들이 떨어지지 않고 웅숭크린 새들처럼.. 김용택* 2009.08.27
겨울, 채송화씨 - 김용택 * 겨울, 채송화씨 - 김용택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꾹꾹 찍어본.. 김용택* 2009.08.18
나무 - 김용택 * 나무 - 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 김용택* 2009.08.18
가을이 오면 - 김용택 * 가을이 오면 - 김용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 김용택 시집 [나무]-창비 김용택* 2009.08.18
꽃이 피고 새가 울면 - 김용택 * 꽃이 피고 새가 울면 - 김용택 푸른 강을 지나며 매화꽃이 피었다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수유나무 아래 앉아 산수유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먼 마을에서 닭이 울고 오래된 툇마루에 살구꽃이 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산에서 산벚꽃이 하얗게 날려오는 꿈.. 김용택* 2009.08.18
첫사랑 - 김용택 * 첫사랑 -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로 .. 김용택* 2009.08.18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김용택 * 마당은 삐뚤어졌어도 장구는 바로 치자 - 김용택 환장허겄네 환장허겄어 아, 농사는 우리가 쎄빠지게 짓고 쌀금은 저그덜이 편히 앉아 올리고 내리면서 며루 땜시 농사 망치는 줄 모르고 나락도 베기 전에 풍년이라고 입맛 다시며 장구 치고 북 치며 풍년잔치는 저그덜이 먼저 지랄이니 .. 김용택* 2009.08.18
산 - 김용택 * 산 - 김용택 강물을 따라 걸을 때 강물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네 인생은 이렇게 흐르는거야 너도 나처럼 흘러봐 하얗게 피어 있는 억새 곁을 지날 때 억새는 이렇게 말했네 너도 나처럼 이렇게 흔들려봐 인생은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연보라색 구절초 곁을 지날 때 구절초꽃은 이.. 김용택* 2009.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