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숲 -스콧 니어링을 그리며 - 도종환 * 저녁숲 -스콧 니어링을 그리며 - 도종환 모란꽃도 천천히 몸을 닫는 저녁입니다 같은 소리로 우는 새들이 서로 부르며 나뭇가지에 깃드는 걸 보며 도끼질을 멈춥니다 숲도 오늘은 여기쯤에서 마지막 향기를 거두어들이는 시간엔 나무 쪼개지는 소리가 어제 심은 강낭콩과 감자.. 도종환* 2012.01.06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 눈 덮인 새벽 - 도종환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놓고 새벽은 산허리로 물러나 앉은 채 사람들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헐벗은 나뭇가지도 텅 빈 들판도 감히 손대기 어려운 고운 풍경으로 바꾸어놓고 고요히 호흡을 가다듬는 초겨울 새벽에는 나도 조건 없이 남을 덮어.. 도종환* 2011.12.27
고요한 물 - 도종환 * 고요한 물 - 도종환 고요한 물이라야 고요한 얼굴이 비추인다 흐르는 물에는 흐르는 모습만이 보인다 굽이치는 물줄기에는 굽이치는 마음이 나타난다 당신도 가끔은 고요한 얼굴을 만나는가 고요한 물 앞에 멈추어 가끔은 깊어지는가 * *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 도종환* 2011.11.23
겨울나기 - 도종환 * 겨울나기 - 도종환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 도종환* 2011.11.14
나무에 기대어 - 도종환 * 나무에 기대어 - 도종환 나무야 네게 기댄다 오늘도 너무 많은 곳을 헤맸고 많은 이들 사이를 지나왔으나 기댈 사람 없었다 네 그림자에 몸을 숨기게 해다오 네 뒤에 잠시만 등을 기대게 해다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왔다는 걸 안다 네 푸른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잠시만 눈.. 도종환* 2011.10.09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 도종환 *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 도종환 산벚나무 잎 한쪽이 고추잠자리보다 더 빨갛게 물들고 있다 지금 우주의 계절은 가을을 지나가고 있고,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 도종환* 2011.09.08
늑대 - 도종환 * 늑대 - 도종환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편안한 먹이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들 찾아 많은 늑대가 개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너는 왜 아직 산골짝 바위틈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불타는 눈빛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달려가던 날카로운 빛으로 맹수들.. 도종환* 2011.08.08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 도종환 *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바람이 분다, 떠나고 싶다." 그렇게 허공에 씁니다. 가을바람이 내 옆에 와 살을 천천히 쓰다듬는 게 느껴진다. 소슬한 가을바람을 앞세우고 떠나고 싶습니다.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이렇게 말했지만 그런 말이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 도종환* 2011.08.08
마음으로 하는 일곱 가지 보시 - 도종환 * 마음으로 하는 일곱 가지 보시 오늘 하루는 어제 죽은 사람이 하루만 더 살기를 간절히 바라던 바로 그날이라고 합니다. 그 생각을 하면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못합니다. 하루하루, 한 시간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보내고자 합니다. 올해는 거창한 다짐을 하지 않고자 합니다. 크고 엄청난 것을 이루게.. 도종환* 2011.08.08
담쟁이 - 도종환 *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 도종환* 201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