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 도종환 *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 도종환 차라리 당신을 잊고자 할 때 당신은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차라리 당신에게서 떠나고자 할 때 당신은 또 그렇게 말없이 제게 오십니다. 남들은 그리움을 형체도 없는 것이라 하지만 제게는 그리움도 살아 있는 것이어서 목마름으로 애타게 물 한 .. 도종환* 2009.10.29
억새 - 도종환 * 억새 - 도종환 저녁호수의 물빛이 억새풀빛인걸 보니 가을도 깊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어머니, 억새풀밖에 마음 둘 데가 없습니다 억새들도 이젠 그런 내 맘을 아는지 잔잔한 가을햇살을 따서 하나씩 들판에 뿌리며 내 뒤를 따라오거나 고갯마루에 먼저 와 여린 손을 흔듭니다 저도 .. 도종환* 2009.10.05
가을비 - 도종환 * 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 도종환* 2009.09.22
꽃잎 인연 - 도종환 * 꽃잎 인연 - 도종환 몸끝을 스치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마음을 흔들고 간 이는 몇이었을까 저녁하늘과 만나고 간 기러기 수만큼이었을까 앞강에 흔들리던 보름달 수만큼이었을까 가지 끝에 모여와주는 오늘 저 수천 개 꽃잎도 때가 되면 비 오고 바람 불어 속절없이 흩어지리 살아 있는 .. 도종환* 2009.09.22
우체통 - 도종환 * 우체통 - 도종환 그들이 사랑을 시작한 강가에는 키가 작은 빠알간 우체통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섶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오며 사랑이 익어가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늘을 넘어 남자의 편지가 가고 저녁 물소리로 잠든 창문을 두드리는 여자의 답장이 밤마다 강을 건너가는 것을 우체통.. 도종환* 2009.09.22
가을 오후 - 도종환 * 가을 오후 - 도종환 고개를 넘어오니 가을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흙빛 산벚나무 이파리를 따서 골짜기물에 던지며 서 있었다 미리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느냐는 내 말에 가을은 시든 국화빛 얼굴을 하고 입가로만 살짝 웃었다 웃는 낯빛이 쓸쓸하여 풍경은 안단테 안단테로 울.. 도종환* 2009.09.22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도종환 *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합니다 - 도종환 내 삶의 자락에서 아름다운 당신을 만나 참 행복합니다 푸근한 모습으로 향기를 품고 신비로운 색깔로 사랑의 느낌을 물씬 풍겨주는 당신 이제는 멀어질 수 없는 연인이 된 것 같습니다 드넓은 하늘 속에 담긴 당신을 떠올릴 때면 나도 모르게 행.. 도종환* 2009.09.07
황홀한 결별 - 도종환 * 황홀한 결별 - 도종환 이 세상에서 가장 샛노란 잎 한 장씩 내려 지붕의 반쪽을 덮고 나머지 반은 당신 가실 길에 깔아놓는 은행나무에게 누가 바이올린 소리를 들려주면 좋겠어요 은행잎이 떨어지면서 긋는 음표의 곡선들을 모아 오선지에 오려붙이며 당신을 생각했지요 가장 황홀할 .. 도종환* 2009.08.20
시래기 - 도종환 * 시래기 - 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 도종환* 2009.08.20
무심천 - 도종환 * 무심천 - 도종환 한 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 도종환* 2009.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