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 이재무 * 십일월 - 이재무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이다.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껴서 심란하고 어수선한 달이다 난방도 안 들어오고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이다 더러 가다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시월이나 십이월에 다 빼앗기고 그저 해도 그만 안 해.. 좋아하는 詩 2018.11.01
가을이 왔다 - 공광규 * 가을이 왔다 - 공광규 메뚜기가 햇살을 이고 와서 감나무 잎에 부려놓았다 귀뚜라미가 악기를 지고 와서 뽕나무 아래서 연주한다 여치가 달을 안고 와서 백양나무 가지에 걸어 놓았다 방아깨비가 강아지풀 숲에 와서 풀씨 방아를 찧고 있다 가을을 이고 지고 안고 찧고 까불며 오는데 .. 좋아하는 詩 2018.09.17
가을 서한 - 나태주 * 가을서한 - 나태주 1 끝내 빈 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 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2 새로 국화잎새 따다 수놓아 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 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저승의 햇살 .. 좋아하는 詩 2018.09.04
이타카 - 콘스탄틴 카바피 * 이타카 - 콘스탄틴 카바피 이타카로 여행을 떠날 때기도하라, 그 길이 모험과 배움으로 가득한긴 여정이 되기를라이스트리고네스와 키클롭스분노에 찬 포세이돈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정신이 고결하고 너의 영혼과 육체에 숭고한 감정이 깃들면 그들은 너의 길을 가로막지 못하리 .. 좋아하는 詩 2018.08.13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 서정주 *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 서정주 우리 님의 손톱의 분홍 속에는 내가 아직 못다 부른 노래가 살고 있어요. 그 노래를 못다 하고 떠나 올 적에 미닫이 밖 해 어스름 세레나아드 위 새로 떠 올라오는 달이 있어요. 그 달하고 같이 와서 바이올린을 키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 안 나.. 좋아하는 詩 2018.08.02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 - 문태준 *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 - 문태준 뻐꾸기의 발음대로 읽고 적는 초여름 이처럼 초여름 가까이에 뻐꾸기는 떠서 밭둑에도 풀이 계속 자라는 무덤길에도 깊은 계곡에도 뻐꾸기의 솥 같은 발음 뻐꾸기의 돌확 같은 발음 한낮의 소리 없는 눈웃음 위에도 오동나무 넓고 푸른 잎사.. 좋아하는 詩 2018.07.11
누가 더 깝깝허까이 - 박성우 * 누가 더 깝깝허까이 - 박성우 강원도 산골 어디서 어지간히 부렸다던 일소를 철산양반이 단단히 값을 쳐주고 사왔다 한데 사달이 났다 워워 핫따매 워워랑께, 내나 같은 말일 것 같은데 일소가 아랫녘 말을 통 알아듣지 못한다 흐미 어찌야 쓰까이, 일소는 일소대로 갑갑하고 철산양반.. 좋아하는 詩 2018.04.16
봄꽃나무 한 그루 - 심재휘 * 봄꽃나무 한 그루 - 심재휘 봄꽃나무는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 하나로 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꽃이 한 나무에 내리기 위해 준비한 그 오랜 시간도 바람 부는 아침의 어느 가지 위에 놓이고 나면 결국 꽃 한 송이의 무게로 흔들릴 뿐 꽃핀 가지는 또 새 가지를 내어 조금씩 가늘어지는 .. 좋아하는 詩 2018.04.08
비꽃 - 이정록 * 봄바람 - 이정록 식은 재 한 삼태기, 불 아궁이를 지나왔나요. 오늘은 호박 심는 날 봄바람이 따뜻하네요. 똥 웅덩이에 코를 대보고 거름 웅덩이에 손을 넣어보네요. 호박 모종 심을 웅덩이는 알맞는 깊이와 넓이 인지 물은 충분히 스몄는지 실눈 뜨고 살펴본 봄바람이 내 귓볼에 대고 속.. 좋아하는 詩 2018.04.06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 김기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 좋아하는 詩 2018.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