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있는 집 - 김용택 * 아내가 있는 집 - 김용택 강가에 보라색 붓꽃이 피어납니다 산그늘이 내린 강 길을 걸어 집에 갑니다 강물이 나를 따라오기도 하고 흐르는 강물을 내가 따라가기도 하고 강물과 나란히 걷기도 합니다 오래된 길에 나를 알아보는 잔 돌멩이들이 눈을 뜨고 박혀 있습니다 나는 푸른 어둠 .. 김용택* 2009.09.04
조금은 오래된 그림 한 장 - 김용택 * 조금은 오래된 그림 한 장 - 김용택 산에 오는 눈이 강에 내립니다 방 안이 환하게 눈이 내리면 나는 이불 속에 엎디어 책을 읽고 아내는 부엌에서 불을 때서 고구마를 삶았습니다 민세는 손가락에 침을 발라 창호지 문에 구멍을 뚫어 놓고 산을 그리며 강으로 내리는 눈송이들을 내다보.. 김용택* 2009.09.04
산중에서 며칠 - 김용택 * 산중에서 며칠 - 김용택 내가 온 곳은 하루가 멀다 하게 눈이 오고, 눈이 오면 산길이 먼저 하얗게 드러났다가 먼저 녹았다. 길은 외길로, 산을 넘는다 눈 위로 얼굴을 내민 작은 돌멩이 얼굴이 젖어 있다 내가 보기에, 숲은 날마다 가만히 있다. 어제 본 소나무와 너도밤나무와 박달나무.. 김용택* 2009.08.27
구이 - 김용택 * 구이 - 김용택 산자락마다 꽃들이 흐드러집니다 다가가서 바라보면 어지럽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면 아찔합니다. 까만 가지 끝에 핀 꽃일수록 아슬아슬 더 붉고 꽃빛은 숨이 턱에 찹니다. 이러다가 자지러지겠어요. 이러다가는 저 꽃이 생사람 잡겠어요 저 꽃빛에 홀려 따라가다가는 .. 김용택* 2009.08.27
폐계 - 김용택 * 폐계 - 김용택 강추위가 와도 강물은 얼지 않았다 강추위가 와도 강물이 얼지 않은 것은 강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라며 비 쌍피로 비 띠를 때리며 큰집 형님은 이러면 손핸디, 하며 패를 거두어간다 벌써 칠피다 뒷산 밤나무에는 익지 않은 밤송이들이 떨어지지 않고 웅숭크린 새들처럼.. 김용택* 2009.08.27
겨울, 채송화씨 - 김용택 * 겨울, 채송화씨 - 김용택 아내는 나를 시골 집에다 내려놓고 차를 가지고 돌아갔다 갑자기, 가야 할 길과 걸어야 할 내 두 발이 흙 위에 가지런히 남는다 어머니 혼자 사시는 우리집 마당에 발길 닿지 않는 땅이 이렇게 많이 있다니? 가만가만 돌아다니며 마당 가득 발자국을 꾹꾹 찍어본.. 김용택* 2009.08.18
나무 - 김용택 * 나무 - 김용택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봄이었어 나, 그 나무에 기대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여름이었어 나, 그 나무 아래 누워 강물 소리를 멀리 들었지 강가에 키 큰 미루나무 한그루 서 있었지 가을이었어 나, 그 나무에 .. 김용택* 2009.08.18
가을이 오면 - 김용택 * 가을이 오면 - 김용택 나는 꽃이에요 잎은 나비에게 주고 꿀은 솔방벌에게 주고 향기는 바람에게 보냈어요 그래도 난 잃은 건 하나도 없어요 더 많은 열매로 태어날 거예요 가을이 오면 * 김용택 시집 [나무]-창비 김용택* 2009.08.18
꽃이 피고 새가 울면 - 김용택 * 꽃이 피고 새가 울면 - 김용택 푸른 강을 지나며 매화꽃이 피었다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산수유나무 아래 앉아 산수유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먼 마을에서 닭이 울고 오래된 툇마루에 살구꽃이 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산에서 산벚꽃이 하얗게 날려오는 꿈.. 김용택* 2009.08.18
첫사랑 - 김용택 * 첫사랑 - 김용택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해 같은 처녀의 얼굴도 새봄에 피어나는 산중의 진달래꽃도 설날 입은 새옷도 아, 꿈같던 그때 이 세상 전부 같던 사랑도 다 낡아간다네 나무가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처럼 새로 피는 깊은 산중의 진달래처럼 아, 그렇게 놀라운 세상이 내게 새로 .. 김용택* 2009.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