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을 지나면서 - 문태준 * 굴을 지나면서 - 문태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저문 길 소를 몰고 굴을 지난다는 것은 빨갛게 눈에 불을 켜는 짐승도 막상 어둠 앞에서는 주춤거린다 작대기 하나를 벽면에 긁으면서 굴을 지나간다 때로 이 묵직한 어둠의 굴은 얼마나 큰 항아리인가 입구에 머리 박고 소리지르면 벽 부딪.. 좋아하는 詩 2009.07.28
바닥 - 문태준 * 바닥 -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 좋아하는 詩 2009.07.28
가재미- 가재미2,3 - 문태준 *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 좋아하는 詩 2009.07.28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열매를 맺고 - 문태준 *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열매를 맺고 - 문태준 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이 막 비 듣는 것 보네 신록에 빗방울이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어느새 푸른 살구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 놓.. 좋아하는 詩 2009.07.05
이제 오느냐 - 문태준 * 이제 오느냐 - 문태준 화분에 매화꽃이 올 적에 그걸 맞느라 밤새 조마조마하다 나는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 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 이제 오느냐 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얼금얼금 엮었으나 울이 깊은 구럭 같.. 좋아하는 詩 2009.06.18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 문태준 *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 문태준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다.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 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 좋아하는 詩 2009.06.18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2 - 문태준 * 살얼음 아래 같은 데 1 - 문태준 가는, 조촘조촘 가다 가만히 한자리서 멈추는 물고기처럼 가라앉은 물돌 곁에서, 썩은 나무싶 밑에서 조으는 물고기처럼 추운 저녁만 있으나 야위고 맑은 얼굴로 마음아, 너 갈 데라도 있니? 살얼음 아래 같은 데 흰 매화 핀 살얼음 아래 같은 데 * 살얼음 .. 좋아하는 詩 2009.06.18
한 송이 꽃 곁에 온 - 문태준 * 한 송이 꽃 곁에 온 - 문태준 눈이 멀어 사방이 멀어지면 귀가 대신 가 세상의 물건을 받아 오리 꽃이 피었다고 어치가 와서 우네 벌떼가 와서 우네 한 송이 꽃 곁에 온 반짝이는 비늘들 소리가 골물처럼 몰리는 곳 한 송이 꽃을 귀로 보네 내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 당신의 은밀한 농담들 .. 좋아하는 詩 2009.06.18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 좋아하는 詩 2009.05.13
맨발 - 문태준 *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 좋아하는 詩 2008.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