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 원불교 박청수 원로교무

효림♡ 2010. 3. 14. 21:26

* [특별기고] 법정 스님을 추모하며 - 박청수 원불교 원로교무

박청수 원불교 원로교무

마르지 않는산 밑의 우물 山中 친구들에게 공양하오니
표주박 하나씩 가지고 와서 저마다 둥근달 건져가소서…
다실 벽에 걸려있는 글귀를 읽어보면서
스님의 다실에 고여 있는 한적함과 청정함은
스님의 내면적 투명함에 연유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법정 스님을 지금부터 꼭 19년 전에 처음 만났다.

나는 일행과 함께 불일암에 당도하였음을 어떻게 알릴까 하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 무렵 손수 군불을 지피고 나서 부엌문을 열고 나오던 스님이 아래채에 서 있는 우리를 보고 "아!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반겨주셨다. 한 번도 뵌 일은 없지만 그렇게 말하는 분이 법정 스님임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불일암에 올 때는 미리 송광사에 전화연락을 하라"는 당부를 지켰기 때문에 아마 스님도 불일암 길손에 대한 전갈을 받으셨음에

틀림없었다. 우리가 묵을 처소인 아래채 쪽마루에 짐을 놓고 갖고 온 호접란을 들고 위채로 올라갔다. 스님은 꽃부터 반기셨다.

"내가 LA 있을 때 많이 보던 꽃이구나. 멀리 오느라 애썼다" 하시며 꽃과 대화하는 사이 나는 매화나무 곁으로 갔다.

아래채에서 위채를 올려다보았을 때, 정적 속의 불일암 뜨락에 피어 있는 매화는 참으로 그윽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매화 가지에 꽃망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고 댓잎이 부서지는 봄햇살이 향기롭습니다. 꽃가지에 향기 번질 때쯤 다녀가십시오'라는 스님의 편지를 받고 나선 길이었다. 겉봉에 '순천 91. 3. 4.'라는 소인이 찍혀 있었다. 나는 시절을 딱 맞추어 온 것이다. 내 곁으로 다가온 스님은 "얘들이 겨울부터 꽃망울을 서서히 부풀리면서 참으로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피었어요. 그렇게 오래 망설였다 피니까 이렇게 향기도 좋은가 봅니다"라고 했다. 스님은 만개(滿開)한 나무를 가리키며 "저것은 이제 혼이 다 빠져나가 버렸어요" 하면서 허허로운 미소를 지었다. 깨끗한 얼굴의 삽이 서로 등을 맞대고 걸려 있었다. 호미와 괭이, 쇠스랑, 크고 작은 톱 등 스님의 살림살이에 소용되는 연장들이 아래채 곳간 안에 질서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불일암 사랑채 뒤뜰에는 작고 예쁜 항아리들이 나란히 묻혀 있었다. 저 독 속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살며시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빨간 글씨로 '열어보지 마시오'라고 쓰고 다시 그 아래에 검정 글씨로 '91년 여름에 먹을 짠무지'라고 쓰여 있었다. 불일암 나그네들의 버릇이 비슷하기에 스님이 이러한 조치를 해 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불일암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우거진 곳에 정결과 질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정결과 질서가 스님의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잠시 무서운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그 모두는 스님의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었다.

'수류화개실(水流花開室)'로 불리는 스님의 다실에서 그날밤 차를 마셨다. 스님은 전깃불을 끄고 운치 있는 촛대에 촛불을 켰다. 그러나 촛불의 불빛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한동안 바라보다 "촛불도 시끄러워"라고 했다. 그러고는 말간 기름이 담긴 하얀 백자 등잔 위로 살짝 올라온 가느다란 까만 심지에 불을 댕기고 촛불을 켰다. 밝음의 강도가 한결 낮아진 방안은 그지없이 아늑해졌다.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스님은 이야기하는 동안 처음에는 차향(茶香)이 그윽한 녹차를, 두 번째는 구수한 우롱차를, 그리고 세 번째는 홍차를 내놓았다. 차의 종류에 따라 다기(茶器)도 바뀌었다. 여러 종류의 차를 음미하면서 마시니 차향과 차 맛이 더욱 향기로웠다.

마르지 않는 산 밑의 우물
山中 친구들에게 공양하오니
표주박 하나씩 가지고 와서
저마다 둥근달 건져가소서.

다실 벽에 걸려 있는 글귀를 다시 읽어보면서 스님의 다실에 고여 있는 한적함과 청정함은 스님의 내면적 투명함에 연유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법정 스님을 '무소유의 실천자'라고 일컫지만 나는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한 관리자라는 점에서 무릎을 꿇게 된다.

내가 불일암으로 법정 스님을 방문했던 1991년은 히말라야 설산에 학교를 설립하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왠지 친근한 마음이 들어 얼마 뒤 설산학교 설립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랬더니 스님께서 편지로 "거들고 싶다"고 하시더니, 내가 있던 원불교 강남교당에 오셔서 100만원을 내놓으시며 "원고료요" 하셨다.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일을 하고 힘이 남아 있으면 되느냐. 큰일을 했으면 힘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위로해 주셨다.

1997년 길상사가 문을 열 때 스님은 봉축위원에 나를 넣으셨다. 그래서 개원식날 갔더니 스님 옆에 김수환 추기경님과 내 자리가 있었다. 아마도 스님은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추기경님을 초청하셨고, 남녀의 차별도 넘어선 분이라 나도 부르셨던 것 같다.

스님은 내 저서 '나를 사로잡은 지구촌 사람들'에 실린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박청수 교무님 하면 나는 문득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을 연상한다. 불교경전에 나오는 천수관음은 두 손과 두 눈으로는 모자라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지니고 한량없고 끝없는 구제를 펼친다. 종교의 본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따뜻한 가슴과 자비의 실천에 있다."

스님의 귀한 격려 말씀을 세세생생 실행할 것을 명심하면서 스님의 참열반을 빈다.

 

* 조선일보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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