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청령포 - 황동규

효림♡ 2010. 7. 25. 10:48

* 청령포(淸泠浦) - 황동규  

 

늦눈
대철(大哲) 플라톤이 이상국가에서 시인(詩人)들을 몽땅 내쫓았다며,                
노점상인 쫓듯이, 좌판들을 뒤엎고!
거 참 잘한 짓이지
가객(歌客)은 이따금 불러 창(唱) 한차례 듣고
술 멕여 보내는 거여
아문!
술 먹고도 행복치 않은 자나
행복치 않은 체하는 자들은 꼬리표를 달도록.  
꼬리표 달아 어디로?
청송 보호감호소?
아니, 영월 청령포로 보내지.  

스스로 자수해 신고하는 자도 있겠지.  
어느 늦눈 뿌린 날 오후, 영월 시외버스 정류장에 내려
택시 잡아타고 청령포로 달려가
강을 가로질러 매어논 와이어를 잡고 건너는
밑이 평평한 배를 타고 서강(西江)을 건너곤
며칠 동안은 소리쳐 불러도 모른 체하라고
사공에게 돈 주며 사정하는 자도 있겠지.  
눈 뿌린 끝이 환한 날.  

* 금표비(禁標碑)
삼면(三面)이 강물이고 뒤에는 육륙봉(六六峰)험준한 봉우리
그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송림(松林) 오천 평(五千坪).  
"동서(東西) 삼백 척(三百尺) 남북 사백구십 척(南北四百九十尺)
이 밖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음."
늦겨울 햇빛 눈부신 눈이불 속에
송림이 따스하다

금표비 곁에 조그만 움집 하나 짓는다면
힘든 계절 하나를 예서 나고 싶다.  
먹을 것 한 짐 싸지고 들어가
눈을 쓸고
종아리까지 빠지는 삭정이와 솔잎 걷어
밝고 가벼운 불 지피고
아침 저녁 서강물로 씻어내면
정신의 군더더기는 며칠내 절로 빠지겠지.  
꿈속에서마저 살이 마른 며칠 후


새로 구멍 뚫어 허리 조인 혁대를 매고 강가에 나가
불러도 건너오지 않는 사공을 기다릴 것인가?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자갈밭을 거닐다
저녁이 오면 흔쾌히 움막으로 되돌아 갈 것인가?
아니면, 이건 비밀이다.  
신발과 양말 벗고 몸이 더 가벼워져
흐르는 얼음장 피하며 물을 살짝살짝 밟고
유유히 걸어 강을 건너 볼 것인가?

* 청령포의 봄노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얼음장 하나에 네댓씩 올라가
때로는 발을 구르며
긴 막대들을 삿대처럼 저으며.  

얼음장들이 노래하고 있다.  
강 건너에는 어느샌가 여자애 여남은 명이 모여
재잘대고 깔깔대고 얼음뱃놀이를 구경하고 있다.  
저녁 햇빛을 받아
얼굴들이 모두 환하다.  
빛나는 것들이 재잘대고 깔깔거린다.  

얼음들이 노래한다.  
청령포가 오르내린다.  
노래하고 웃는 것들 앞에서
노래하고 웃는 몸짓이라도 해야 할까
마음을 온통 바람에 맡기고.....
저놈 봐!
애 하나가 자지러지듯 웃다가 미끄러져 물 속에 빠진다.  
앗 차거!
그애와 내가 동시에 떨며 건져진다.  
위아래 이가 힘차게 부딪칠 때
한참 밝게 웃는다. *

 

* 황동규시집 [악어를 조심하라고?]-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