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맑은 차향기가 되라 - 정호승
등을 달아라 봄바람이 분다
등불을 밝혀라 봄비가 내린다
손을 잡아라 섬진강과 함께 춤을 추어라 지리산과 함께
지금은 하동 차나무에 새움이 돋는 거룩한 시간 푸른 빗줄기 사이로 찻잎도 푸르다
지리산은 아들을 키우듯 야생의 차나무를 키우고 섬진강은 딸을 낳듯 하동녹차를 낳는다
바람아 불어라 등불을 밝혀라
지금은 우리 모두 만등헌다의 성스러운 시간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마음의 귀를 열어라
우전이 빙그레 미소 짓는 소리가 들린다
일찍 일어나 소나무에 앉은 아침의 어린 새들처럼
노래를 부르는 세작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중작이 어머니처럼 토닥토닥 자장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대작이 아버지처럼 천천히 논길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차를 끓여라 하동의 왕의 녹차를 끓여라
차를 들어라 녹차의 왕을 들어라
하동녹차 속에는 풍경소리가 들어 있다
하동녹차 속에는 지리산을 넘나드는 흰구름이 들어 있다
하동녹차 속에는 지리산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의 강물소리가 들어 있다
보라 쌍계사 부처님도 하동녹차를 드신다
하동녹차를 드시고 빙긋이 웃으시며 말없이 말씀하신다
차 한잔을 하면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차 한잔을 하면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차 한잔을 하면 남의 허물이 내 허물로 보이고
차 한잔을 하면 누구나 부처님으로 보인다
지금은 천년 세월이 천년향으로 우러나오는 고요한 시간
여기 차의 고향 하동에서
천년 고요의 차향기를 맡으라
고단한 인생의 맑은 차향기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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