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도요새 - 정호승

효림♡ 2009. 9. 29. 08:35

* 도요새 - 정호승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
수차가 함부로 버려진 소금밭에
눈발이 빗금을 치고 지나가다가
무너진 소금창고 지붕 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
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금을 만들지 않는다
염부들은 모두 다 집으로 돌아가
화투나 치고 소주나 마시고
길가의 칠면초만 저 혼자 붉다
만조 때 갯벌 가득 일몰이 차 오르면
쫑쫑 찡찡 쉿 소리치며
일제히 염전으로 날아오르던 나의 사랑은
언제 다시 소금으로 빛날 것인가
나는 다시 허공에 무수히 발자국을 찍는다
멀리 새만금 방조제가 가물거린다
칠산 앞바다도 수평선이 사라졌다
염전에 물을 대던 경운기도 녹슨 잠이 들고
옥구염전에 눈은 그치지 않는데
나는 몇마리 장다리물떼새와 함께
외로운 소금밭을 서성거린다
나의 발자국이 소금이 될 때까지
나의 눈물이 소금이 될 때까지 *

 

* 정호승시집[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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