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 1 - 김용택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 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답니다
* 봄비 2
어제는 하루종일 쉬지도 않고
고운 봄비가 내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막 돋아나는 풀잎 끝에 가 닿는 빗방울들
풀잎들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가만가만
파랗게 자라고
나는 당신의 살결같이 고운 빗줄기 곁을
조용조용 지나다녔습니다
이 세상에 맺힌 것들이 다 풀어지고
이 세상에 메마른 것들이 다 젖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
내 마음이 환한 하루였습니다. 어제는 정말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운 당신이 하얀 맨발로
하루종일 지구 위를
가만가만 돌아다니고
내 마음에도 하루 종일 풀잎들이 소리도 없이 자랐답니다. 정말이지
어제는
옥색 실같이 가는 봄비가 하루 종일 가만가만 내린
아름다운 봄날이었습니다
* 봄비
비가 오네요
봄비지요
땅이 젖고
산이 젖고
나무들이 젖고
나는 그대에게 젖습니다
앞강에 물고기들 오르는 소리에
문득 새벽잠이 깨었습니다
* 봄비
내 가슴에 묻혔던 내 모습은
그대 보고 싶은 눈물로 살아나고
그대 모습 보입니다
내 가슴에 메말랐던
더운 피는 그대 생각으로
이제 다시 붉게 흐르고
내 가슴에
길 막혔던 강물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았습니다
아
내 눈에 메말랐던
내 눈물이 흘러
내 죽은 살에 씻기며
그대
푸른 모습
언 땅을 뚫고 솟아나는 모습 보입니다
* 비
새벽비 소리에
홀로 깨었습니다
창호지 문이 환하게 밝아져 오는
오랜 시간
그 빛이 좋습니다
어디선가 휘파람새가 울기 시작합니다
봄비는 사방에 떨어지며
그리운 당신 모습을 다 그려내고
온갖 소리들은
온갖 생각을 다 만들어냅니다
온갖 소리 중에서
당신의 모습을 쫓아
뒤척이는데
당신 생각은 끝도 갓도 없이 넓고 깊어져서
당신 생각으로
환히 날이 샙니다
* 초봄, 산중일기
오늘은 하루 종일 산중에 봄비입니다
문 열면 그대 가듯 가만가만 가고
문 닫으면 그대 오듯 가만가만 옵니다
문 닫으면 열고 싶고
문 열면 닫고 싶고
그 두 맘이 반반입니다
한 맘이 반을 넘어
앞산 뒷산 산산이 다 초록이 되어버리고
그대가 내 맘 안팎에서 빨리
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내 맘은 지금 비 지나는
물 위 같습니다
자꾸 동그라미가 그대 얼굴로
죽고 삽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서성여도 젖지 않는
산중에 오락가락 봄비였습니다.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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