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立春) - 이해인
꽃술이 떨리는
매화의 향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 있는 모든 것들
다시 사랑하라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세요, 봄 *
* 꽃과 나
예쁘다고
예쁘다고
내가 꽃들에게
말을 하는 동안
꽃들은 더 예뻐지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꽃들이 나에게
인사하는 동안
나는 더 착해지고
꽃물이 든 마음으로
환히 웃어 보는
우리는
고운 친구 *
* 꽃이 진 자리에
살구꽃이 진 자리에
푸른 잎이 돋더니
이어서 살구열매
앙증스럽게 달리기 시작하고
매화가 진 자리에
푸른 잎이 돋더니
이어서 매실이
어여쁘게 달리기 시작하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러 번 눈으로 보았지만
오늘은 왜 이리 새로운지
왜 이리 놀라운지
나무 아래서
떠날 줄을 모르는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는
꽃이 진 자리마다
익어가는 열매를
사랑 담긴 시간들을
오래오래 기념하고 싶어서
나는 나무를 꼭 안아봅니다 *
* 이해인시집[작은 기쁨]-열림원
* 바람에게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 날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도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일지라도 자꾸 가라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준 그 한 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 잎 두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 잎 두 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요
낙엽 빛깔 닮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워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이해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노인의 편지 - 이해인 (0) | 2011.03.07 |
---|---|
우정일기 1~4 - 이해인 (0) | 2011.03.07 |
가을편지 - 이해인 (0) | 2010.09.13 |
아름다운 모습 - 이해인 (0) | 2010.08.02 |
별을 보며 - 이해인 (0) | 2009.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