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새해 첫날의 소망 - 이해인

효림♡ 2012. 1. 1. 09:30

* 새해 첫날의 소망 - 이해인

가만히 귀 기울이면

첫눈 내리는 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 같은

하얀 새 달력 위에
그리고 내 마음 위에

 

바다 내음 풍겨오는

푸른 잉크를 찍어

희망이라고 씁니다

창문을 열고

오래 정들었던 겨울 나무를 향해
'한결같은 참을성과 고요함을 지닐 것'

이라고 푸른 목소리로 다짐합니다

세월은 부지런히

앞으로 가는데

나는 게으르게

뒤처지는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후회하며


올려다본 하늘에는

둥근 해님이 환한 얼굴로

웃으라고 웃으라고

나를 재촉합니다

너무도 눈부신 햇살에

나는 눈을 못 뜨고

해님이 지어주는

기쁨의 새 옷 한 벌
우울하고 초초해서 떨고 있는

불쌍한 나에게 입혀줍니다

노여움을 오래 품지 않는 온유함과

용서에 더디지 않은 겸손과

감사의 인사를 미루지 않는 슬기를 청하며

촛불을 켜는 새해 아침

나의 첫마음 또한

촛불만큼 뜨겁습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어디서나 평화의 종을 치는

평화의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모든 이와 골고루 평화를 이루려면

좀더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겸허히 두 손 모으는

나의 기도 또한 뜨겁습니다

진정 사랑하면

삶이 곧 빛이 되고 노래가 되는 것을

나날이 새롭게 배웁니다
욕심 없이 사랑하면

지식이 부족해도

지혜는 늘어나 삶에 힘이 생김을

체험으로 압니다

우리가 아직도 함께 살아서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주고받는

평범하지만 뜻 깊은 새해 인사가

이렇듯 새롭고 소중한 것이군요
서로에게 더없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선물이군요


이 땅의 모든 이를 향한

우리의 사랑도

오늘은

더욱 순결한 기도의 강으로

흐르게 해요, 우리

부디 올 한 해도

건강하게 웃으며

복을 짓고 복을 받는 새해 되라고

가족에게 이웃에게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래처럼 즐겁게 이야기해요, 우리 *

* 이해인시집[작은 기도]-열림원 

 

* 새해 아침에   

창문을 열고
밤새 내린 흰 눈을 바라볼 때의
그 순결한 설레임으로
사랑아,
새해 아침에도
나는 제일 먼저
네가 보고 싶다
늘 함께 있으면서도
새로이 샘솟는 그리움으로
네가 보고 싶다
새해에도 너와 함께
긴 여행을 떠나고
가장 정직한 시를 쓰고
가장 뜨거운 기도를 바치겠다

 

내가 어둠이어도
빛으로 오는 사랑아,
말은 필요 없어
내 손목을 잡고 가는 눈부신 사랑아,
겨울에도 돋아나는
내 가슴 속 푸른 잔디 위에
노란 민들레 한 송이로
네가 앉아 웃고 있다


날마다 나의 깊은 잠을
꿈으로 깨우는 아름다운 사랑아
세상에 너 없이는
희망도 없다
새해도 없다

 

내 영혼 나비처럼
네 안에서 접힐 때
나의 새해는 비로소
색동의 설빔을 차려 입는다
내 묵은 날들의 슬픔도
새 연두 저고리에
자줏빛 끝동을 단다
아름다운 사랑아

 

* 새해 새 아침   

새해의 시작도
새 하루부터 시작됩니다.

시작을 잘 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겸손히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침이여

어서 희망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사철 내내 변하지 않는
소나무 빛 옷을 입고
기다리면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키워 온 희망

힘들어도 웃으라고
잊을 것을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희망은 자꾸만 우리를 재촉하네요

어서 기쁨의 문을 열고 들어 오십시오

오늘은 배추밭에 앉아
차곡차곡 시간을 포개는 기쁨
흙냄새 가득한 싱싱한 목소리로
우리를 부르네요

땅에 충실해야 기쁨이 온다고
기쁨으로 만들 숨은 싹을 찾아서
잘 키워야만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조용조용 일러주네요

어서 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오십시오

언제나 하얀 소금밭에 엎드려
가끔은 울면서
불을 쪼이는 사랑

사랑에 대해
말만 무성했던 날들이 부끄러워
울고 싶은 우리에게
소금들이 통통 튀며 말하네요

사랑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팽개쳐진 상처들을
하얀 붕대로 싸매주라고

새롭게 주어진 시간
만나는 사람들을
한결같은 따듯함으로 대하면
그것이 사랑의 사작이라고-
눈부신 소금 꽃이 말을 하네요

시작을 잘해야만
빛나게 될 삶을 위해
설레이는 첫 감사로 문을 여는 아침
천년의 기다림이 비로서 시작되는
하늘빛 은총의 아침

서로가 복을 빌어주는 동안에도
이미 새 삶으로 거듭나는


"새해 새 아침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