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상의 끼니 - 이기철
종일 땀 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 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 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은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할 수 있는가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추운 생을 데울 수 있는가
어느새 神이 되어버린 식탁 위의 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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