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커피 - 오탁번
옛날 다방에서
그냥커피를 마시는 토요일 오후
산자락 옹긋옹긋한 무덤들이
이승보다 더 포근하다
채반에서 첫잠 든 누에가
두잠 석잠 다 자고
섶에 올라 젖빛 고치를 짓듯
옛날다방에서 그냥커피 마시며
저승의 잠이나 푹 자고 싶다 *
* 커피 기도 -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 이상국시집[달은 아직 그 달이다]-창비,2016
커피기도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에서
[출처] 이투데이: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33514#csidx151f54b5e9943629261853583001437
![](http://linkback.etoday.co.kr/images/onebyone.gif?action_id=151f54b5e9943629261853583001437)
* 커피 - 윤보영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네요
아
그대 생각을 빠트렸군요 *
* 커피 가는 시간 - 문정희
몇 권의 책을 끼고 잠들며
* 커피를 마시며 - 신달자
견디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신다
남 보기에라도
수평을 지키게 보이려고
지금도 나는
다섯번째
커피 잔을 든다
실은
안으로
수평은커녕
몇 번의 붕괴가
살갗을 찢었지만
남 보이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해서
배가 아픈데
아픈데
깡소주를
들이키는 심정으로
아니
사약(死藥)처럼
커피를 마신다.
* 어느 날의 커피 - 이해인
갑자기 허무해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가슴이 터질 것 만 같고
눈물이 쏟아지는데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데
만날 사람이 없다
주위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날
이런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니
수첩에 적힌 이름과 전화번호를
읽어 내려가 보아도
모두가 아니었다.
혼자 바람맞고 사는 세상
거리를 걷다 가슴을 삭이고
마시는 뜨거운 한 잔의 커피
아~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
* 심야(深夜)의 커피 - 박목월
이슥토록
글을 썼다
새벽 세 時(시)
시장기가 든다
연필을 깎아 낸 마른 향나무
고독한 향기
불을 끄니
아아, 높이 靑(청)과일 같은 달
겨우 끝맺음
넘버를 매긴다
마흔 다섯 장의
散文(산문-흩날리는 글발)
이천 원에 이백원이 부족한
초췌한 나의 분신들
아내는 앓고.....
지쳐 쓰러진 萬年筆(만년필)의
너무나 엄숙한
臥身(와신)
사륵사륵
설탕이 녹는다
그 정결한 投身(투신)
그 고독한 溶解(용해)
아아, 深夜(심야)의 커피
暗褐色 深淵(암갈색 심연)을
혼자 마신다 *
* 커피 - 오세영
사랑한다고 쓸까,
미워한다고 쓸까,
채울 말이 없는 빈 원고지 앞에서
바르르 떠는 펜,
바르르 떠는 손으로
한 잔의 커피를 든다.
달지도 않다.
쓰지도 않다.
단맛과 쓴맛이 한가지로 어우러내는
그 향기,
커피는 설탕을 적당히 쳐야만
제 맛이다.
블랙 커피는 싫다.
커피 잔에 녹아드는 설탕처럼
이성의 그릇에 녹아드는 감성,
그 원고지의 빈 칸 앞에서
밤에 홀로 커피를 드는 것은
나를 바라다보는 일이다.
* 한 잔의 Coffee - 용혜원
하루에
한 잔의 Coffee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셔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 날 인가?
빈 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Coffee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
* 커피 리필 - 김하인
가슴으로 당신을 마십니다. 마셔도 마셔도 다함없이 당신이 그리운 건 내 사랑이 계속 리필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날 떠나고 작별을 고했어도 한 삼 년은 너끈히 당신을 가슴으로 마실 수 있습니다. 이토록 저미고 아픈 바에야 물기는 좀 많겠습니까. 눈물로 바닥을 낸다 해도 내 슬픔의 양이 다시 채워지는 건 당신에 대한 내 그리움이 끊임없이 리필되기 때문이죠. 당신…… 다시, 당신을 제게 따라주실 순 없겠습니까. 당신과의 첫 만남과 시작으로 다시 한 번만 제 가슴 가득히 채워주실 수는 없는지요. 커피를 리필시킬 때마다 전 이렇게 당신에 대한 제 사랑도 꼭 리필시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