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만일 - 강은교
내 만일 폭풍이라면
저 길고 튼튼한 벽 너머로
한번 보란 듯 불어볼 텐데.....
그래서 그대 가슴에 닿아볼 텐데.....
번쩍이는 벽돌쯤 슬쩍 넘어뜨리고
벽돌 위에 꽂혀 있는 쇠막대기쯤
눈 깜작할 새 밀쳐내고
그래서 그대 가슴 깊숙이
내 숨결 불어넣을 텐데.....
내 만일 안개라면
저 길고 튼튼한 벽 너머로
슬금슬금 슬금슬금
기어들어
대들보건 휘장이건
한번 맘껏 녹여볼 텐데.....
그래서 그대 피에 내 피
맞대어볼 텐데
내 만일 종소리라면
어디든 스며드는
봄날 햇빛이라면
저 벽 너머
때없이 빛소식 봄소식 건네주고
우리 하느님네 말씀도 전해줄 텐데.....
그래서 그대 웃음 기어코 만나볼 텐데.....
사랑하는 마음뿐으로
그리운 마음뿐으로
그런데 그대여
오늘밤은 참 깊구나.
질기기도 하구나.
기다려다오.
기다려다오. *
* 강은교시집[소리집]-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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