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 이재무 * 십일월 - 이재무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이다.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껴서 심란하고 어수선한 달이다 난방도 안 들어오고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일 년 중 가장 추운 달이다 더러 가다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시월이나 십이월에 다 빼앗기고 그저 해도 그만 안 해.. 좋아하는 詩 2018.11.01
바다와 나비 - 김기림 * 바다와 나비 - 김기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 .. 좋아하는 詩 2015.08.10
설사하다 - 정호승 * 설사하다 - 정호승 아침에 부석사 목어를 구워먹다 저녁에 천은사 목어를 삶아먹다 한밤에 아무도 몰래 운주사 목어를 데쳐먹다 다음날 아침에도 내소사 목어를 구워먹고 선운사 목어를 삶아먹고 송광사 목어를 회떠먹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나라 산사의 목어란 목어는 다 회떠먹고 .. 정호승* 2011.09.26
허만하 시 모음 * 바다의 성분 - 허만하 최초의 인간이 흘렸던 한 방울 눈물 안에 모든 시대의 슬픔이 녹아 있듯 바다에는 소금이 녹아 있다. 뺨을 흘러내리는 최초의 한 방울이 머금고 있었던 가장 순결한 푸름. 바람이 불타는 누런 보리밭에서 낫질하는 사람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 안에 바다가 있다.. 시인 詩 모음 2010.08.10
늘보의 특강 - 김추인 * 길 - 김추인 문을 나서면 문득 지도보다 먼저 길이 내 곁으로 다가서며 너 어디 갈래? 묻는다 못 들은 척 호주머니나 뒤적뒤적 딴청이면 그래 그래 그래 길이 그냥 길을 내준다 슬픈 날은 슬픔 쪽으로 쓸쓸한 날은 아직 길도 안 난 산기슭 아직 읽어내지 못한 내 이승의 끄트머릴 힐끗 보.. 좋아하는 詩 2010.06.25
박영근 시 모음 * 저 꽃이 불편하다 - 박영근 모를 일이다 내 눈앞에 환하게 피어나는 저 꽃덩어리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 돌리는 거 불붙듯 피어나 속속잎까지 벌어지는 저것 앞에서 헐떡이다 몸뚱어리가 시체처럼 굳어지는 거 그거 밤새 술 마시며 너를 부르다 네가 오면 쌍소리에 발길질하는 거 비바.. 시인 詩 모음 2010.03.22
사랑의 허물 - 윤후명 * 사랑의 허물 - 윤후명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오직 하나의 마음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헤어지는 연습만으로만 살아왔다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하면서도 그 나무 아래 그 꽃 아래 그 새 울음소리 아래 모두 사랑의 허물만 벗어놓고 나는 어디로 .. 좋아하는 詩 2010.02.22
장석남 시 모음 * 꽃 본 지 오래인 듯 - 장석남 가을 꽃을 봅니다 몇 포기 바람과 함께 하는 살림 바람과 나누는 말들에 귀 기울여 굳은 혀를 풀고요 그 철늦은 흔들림에 소리나는 아이 울음 듣고요 우리가 스무 살이 넘도록 배우지 못한 우리를 맞는 갖은 설움 그런 것들에 손바닥 부비다보면요 얘야 가자.. 시인 詩 모음 2010.02.09
길 - 김용택 * 길 - 김용택 지금 어디서 어디만큼 왔습니까. 또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여긴 어디고 한발 내디뎌 거긴 어디랍니까 바람 앞에 앉아 숲입니다. 바람 부는 숲이지요 이 길도 평지를 지나 산굽이를 돌고 고개를 넘어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겠지요 가본 길이 세상에 있기는 있을.. 김용택* 2009.07.16
길 - 김용택 * 길 - 김용택 너를 만나려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 길을 나는 왔다 보아라 나는 네 앞에서만 이렇게 눈부신 나를 그린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 길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김용택* 2009.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