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소식 - 도종환
날이 풀리면 한번 내려오겠다곤 했지만
햇살 좋은 날 오후 느닷없이 나타나는 바람에
물 묻은 손 바지춤에 문지르며
반가움에 어쩔 줄 몰라하듯
나 화사하게 웃으며 나타난 살구꽃 앞에 섰네
헝클어진 머리 빗지도 않았는데
흙 묻고 먼지 묻은 손 털지도 않았는데
해맑은 얼굴로 소리 없이 웃으며
기다리던 그이 문 앞에 와 서 있듯
백목련 배시시 피어 내 앞에 서 있네
몇 달째 소식 없어 보고 싶던 제자들
한꺼번에 몰려와 재잘대는 날
내가 더 철없이 들떠서 떠들어쌓는 날
그날 그 들뜬 목소리들처럼
언덕 아래 개나리꽃 왁자하게 피었네
나는 아직 아무 준비도 못 했는데
어어 이 일을 어쩌나
이렇게 갑자기 몰려오면 어쩌나
개나리꽃 목련꽃 살구꽃
이렇게 몰려오면 어쩌나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도종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무는 꽃잎 - 도종환 (0) | 2009.04.13 |
---|---|
꽃 피는가 싶더니 꽃이 지고 있습니다 - 도종환 (0) | 2009.04.13 |
다시 피는 꽃 - 도종환 (0) | 2009.03.26 |
풀잎 하나를 사랑하는 일도 괴로움입니다 - 도종환 (0) | 2009.03.26 |
아픈 사랑일수록 그 향기는 짙다 - 도종환 (0) | 2009.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