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 문태준 *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 - 문태준 이제는 아주 작은 바람만을 남겨둘 것 흐르는 물에 징검돌을 놓고 건너올 사람을 기다릴 것 여름 자두를 따서 돌아오다 늦게 돌아오는 새를 기다릴 것 꽉 끼고 있던 깍지를 풀 것 너의 가는 팔목에 꽃팔찌의 시간을 채워줄 것 구름수레에 실려가듯 계절을 .. 좋아하는 詩 2018.11.07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 - 문태준 * 뻐꾸기 소리는 산신각처럼 앉아서 - 문태준 뻐꾸기의 발음대로 읽고 적는 초여름 이처럼 초여름 가까이에 뻐꾸기는 떠서 밭둑에도 풀이 계속 자라는 무덤길에도 깊은 계곡에도 뻐꾸기의 솥 같은 발음 뻐꾸기의 돌확 같은 발음 한낮의 소리 없는 눈웃음 위에도 오동나무 넓고 푸른 잎사.. 좋아하는 詩 2018.07.11
동시 세 편 - 문태준 * 동시 세 편 - 문태준 가을 엄마는 나한테 가랑잎 같은 잔소리를 해요 그래도 나는 엄마에게 쪼그만 가랑잎이 되어요 엄마 무릎 아래 잠이 올 때까지 가랑잎처럼 뒹굴어요 * 시험 망친 날 운동장을 아무도 없는 심심한 운동장을 신발을 질질 끌며 혼자 갈 때 해바라기들도 오늘은 고개를 .. 동시 2018.03.19
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 다시 봄이 돌아오니 - 문태준 누군가 언덕에 올라 트럼펫을 길게 부네 사잇길은 달고 나른한 낮잠의 한군데로 들어갔다 나오네 멀리서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네 산속에서 신록이 수줍어하며 웃는 소리를 듣네 봄이 돌아오니 어디에고 산맥이 일어서네 흰 배의 제비는 처마에 날아들고.. 좋아하는 詩 2018.03.19
문태준 시 모음 3 *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 문태준 노랗게 잘 익은 오렌지가 떨어져 있네 붉고 새콤한 자두가 떨어져 있네 자줏빛 아이리스 꽃이 활짝 피어 있네 나는 곤충으로 변해 설탕을 탐하고 싶네 누가 이걸 발견하랴, 몸을 굽히지 않는다면 태양이 몸을 굽힌, 미지근한 어스름도 때마침 좋네 누가 .. 시인 詩 모음 2015.07.23
측백나무가 없다 - 문태준 * 측백나무가 없다 - 문태준 측백나무 곁에 서 있었다 참새 떼가 모래알 같은 자잘한 소리로 측백나무에서 운다 그러나 참새 떼는 측백나무 가지에만 앉지는 않는다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참새 떼는 나의 한 장의 白紙에 깨알 같은 울음을 쏟아놓고 감씨를 쏟아놓고 허공 한 촉을 물고 그 .. 좋아하는 詩 2013.09.28
아침 - 문태준 * 아침 - 문태준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 좋아하는 詩 2012.10.31
늦가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 늦가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 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 좋아하는 詩 2009.11.16
빈집의 약속 - 문태준 * 빈집의 약속 - 문태준 마음은 빈집 같아서 어떤 때는 독사가 살고 어떤 때는 청보리밭 너른 들이 살았다 볕이 보고 싶은 날에는 개심사 심검당 볕 내리는 고운 마루가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어느 날에는 늦눈보라가 몰아쳐 마음이 서럽기도 하였다 겨울 방이 방 한 켠에 묵은 메주를 매.. 좋아하는 詩 2009.08.25
바깥 - 문태준 * 바깥 - 문태준 장대비 속을 멧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탄환(彈丸)처럼 빠르다 너무 빠른 것은 슬프다 갈 곳이 멀리 마음이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얀 참깨꽃 핀 한 가지에서 도무지 틈이 없는 빗속으로 소용돌이 쳐 뚫고 날아가는 멧새 한 마리 저 전속력(全速力)의 힘 그리움의 힘으로 .. 좋아하는 詩 2009.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