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시詩 - 파블로 네루다

효림♡ 2009. 7. 15. 07:46

* 시詩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였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熱)이 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遊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虛空)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정현종 역

 

*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해질 무렵

붉은 석양에 걸려 있는

그리움입니다

빛과 모양 그대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름입니다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부드러운 입술을 가진 그대여,

그대의 생명 속에는

나의 꿈이 살아 있습니다

그대를 향한

변치 않는 꿈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사랑에 물든

내 영혼의 빛은

그대의 발밑을

붉은 장밋빛으로 물들입니다


오, 내 황혼의 노래를 거두는 사람이여,

내 외로운 꿈속 깊이 사무쳐 있는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는 나의 전부입니다

그대는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석양이 지는 저녁

고요히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나는 소리 높여 노래하며

길을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내 영혼은


그대의 슬픈 눈가에서 다시 태어나고

그대의 슬픈 눈빛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

 

* 벌레

그대의 허리에서 그대의 발을 향해

나는 기나긴 여행을 하고 싶다

 

나는 벌레보다 더 작은 존재

나는 이 언덕들을 지나간다.

이것들은 귀리빛깔을 띠고 있는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는

가느다란 자국들을 갖고 있다

몇 센티미터 정도의 불에 데인 자국들을,

창백한 모습들을

 

여기 산이 하나 있다.

나는 거기서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

오오 얼마나 거대한 이끼인가!

그리고 분화구 하나와 촉촉이 젖어 있는

불의 장미 한 송이가 있다!

그대의 다리들을 따라 내려오면서

나선형을 그리며 생각에 잠기거나

혹은 여행하면서 잠을 자다가

마치 맑은 대륙의

단단한 꼭대기들에 이르듯이

둥그런 단단함을 지닌 그대의 무릎에 나는 도달한다

 

그대의 발을 향하며 나는 미끄러진다

날카롭고, 느릿하고,

반도(半島)같은 그대 발가락들의

여덟 개 갈라진 틈새로

그리고 그 발가락들에서

하얀 시트의 허공으로

나는 떨어진다, 눈 멀고

굷주린 채 그대의 타오르는 작은 그릇 모양의

윤곽을 찾아 해매이면서! *

 

* 산책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무감각하게, 양복점이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가 있다, 시원(始原)과 재의 물위를

떠다니는 펠트 백조처럼.

이발소의 냄새는 나를 소리쳐 울게 한다.

난 오직 돌이나 양털의 휴식을 원할 뿐,

다만 건물도, 정원도, 상품도, 안경도,

승강기도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발이 내 손톱이 내 머리칼이

내 그림자가 꼴 보기 싫을 때가 있다.

산다는 게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

나는 차분히 산책을 한다. 두 눈을 뜨고, 구두를 신고,

분노하며, 망각을 벗 삼아,

걷는다. 사무실과 정형외과용 치료장구 점들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철사 줄에 옷이 널려있는 뜰을 지나친다.

팬티와 타올과 셔츠가 더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부분 -김현균 역

 

* 사랑의 시 1

여자의 육체, 하얀 구릉, 눈부신 허벅지,
몸을 내맡기는 그대의 자태는 세상을 닮았구나.
내 우악스런 농부의 몸뚱이가 그대를 파헤쳐
땅 속 깊은 곳에서 아이 하나 튀어나오게 한다.

터널처럼 나는 홀로였다. 새들이 내게서 달아났고
밤은 내 가슴으로 거세게 파고들었다.
난 살아남기 위해 그대를 벼렸다, 무기처럼,
내 활의 화살처럼, 내 투석기의 돌멩이처럼.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은 오고, 난 그대를 사랑한다.
가죽과, 이끼와, 단단하고 목마른 젖의 몸뚱이여.
아 젖가슴의 잔이여! 아 넋 잃은 눈망울이여!
아 불두덩의 장미여! 아 슬프고 느릿한 그대의 목소리여!

내 여인의 육체여, 나 언제까지나 그대의 아름다움 속에 머물러 있으리.
나의 목마름, 끝없는 갈망, 막연한 나의 길이여!
영원한 갈증이 흐르고, 피로가 뒤따르고,
고통이 한없이 계속되는 어두운 강 바닥이여.
*

-김현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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