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옥잠화 - 정호승

효림♡ 2009. 10. 12. 08:35

* 옥잠화 - 정호승

가을입니다
초승달이 떴습니다
동쪽으로 가는 사람은 동쪽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고
서쪽으로 가는 사람은 서쪽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고
나는 당신의 눈동자 속으로 초승달을 가지고 가서
초승달에 걸터앉아
옥잠화
당신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나는 오늘도 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어드리지 못하고
돌부처님들이 흘리는 눈물도 닦아드리지 못했으나
옥잠화
당신은 아직도 못난 저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굳이 해탈의 꽃
아니되시면 또 어떠신가요
가을이 깊어갈수록 백련암 뜨락에 고개 숙여 시들어가는
당신을 사랑하다가
나는 그만 초승달에서 떨어져 나뒹굽니다 *

 

* 정호승시집[포옹]-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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