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첫눈 - 이정하

효림♡ 2009. 11. 24. 08:13

* 첫눈 - 이정하

아무도 없는 뒤를 자꾸만 쳐다보는 것은

혹시나 네가 거기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러나 너는 아무데도 없었다


낙엽이 질 때쯤 나는 너를 잊고 있었다 

색 바랜 사진처럼 까맣게 너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첫눈이 내리는 지금,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너의 생각이 싸아하니 떠오르는 것은 어쩐 일일까

그토록 못 잊어 하다가

거짓말처럼 너를 잊고 있었는데

첫눈이 내린 지금


자꾸만 휑하니 비어 오는 내 마음에

함박눈이 쌓이듯 네가 쌓이고 있었다 

* 이정하시집[한 사람은 사랑했네 ]-자음과모음 

 

* 첫눈 내린 날  

첫눈 내린 날, 내 가슴은

한없이 너른 들판입니다

설혹, 당신이 스쳐 지나가더라도

선명한 발자국으로 당신을 껴안는

그런 들판입니다


당신은 나를 밟고 지나갔음에도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을 안고 있음이여

당신은 나를 버렸음에도

나는 당신을 버릴 수 없음이여

* 이정하시집[어쩌면 그리 더디 오십니까]-아래아

 

* 첫눈 내린 날 내 가슴은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이라는 말만 입에 담더라도 내 가슴은 한없이 너른 들판이 되고 말지요

설혹 당신이 스쳐 지나간다 할지라도 선명한 발자국만은 남는

그런 너른 가슴으로 당신을 껴안는 들판이 되고 말지요


첫눈이 내렸습니다

첫눈이라는 말만 입에 담더라도 나는 조용히 눈을 감게 되지요

그러면, 쓸쓸한 내 마음의 간격 사이로도 눈이 내리고

저 너머 빈 들판에서 홀로 서 있는 나무가 떠오릅니다

당신은 나를 버렸음에도 나는 결코 당신을 버릴 수 없는

첫눈 내린 날의 내 가슴


첫눈이 내렸습니다

이제 그만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 이정하시집[사랑하지 않아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면]-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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