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효림♡ 2009. 12. 16. 08:09

*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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