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비 - 도종환
사월이었어요 석굴암 돌부처님을 뵙기 위해
자정 지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어요
차를 타고 가 부처님을 뵙는다는 건
안 된다 해서 산길을 걷기로 했어요
산벚꽃이 부서진 별조각처럼 반짝이며
쏟아져내리고 있었어요
꽃잎 하얗게 지는
밤길은 눈부셨어요
스님의 낮고 고아한 독경소리 뒤에
촉촉히 젖은 무릎을 꿇고 앉아 올려다보니
돌부처님은 가만히 숨을 쉬고 계셨어요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쉴 때마다
가슴과 우견 편단이
살며시 오르내리는 게 보였어요
동해바다까지 갔다가
바닷내음 품어안고 빨려들어오는 호흡이
천지에 장엄한 새벽을 여는 동안
나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앉아 있었어요
아름다운 위엄
말없이 무릎을 끓게 하는 온화함
높고 깨끗해진 법신에서 배어나오는 품격 밑에서
나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어요
사월이었어요 밤에 지던 꽃은
새벽에도 지고 있었고
꼼짝 어디에
밤사이에
깨달음을 얻은 이 있는지
꽃비 가득히 내리고 있었어요
깨달은 이의 경안해진 마음이
고삐를 놓은 바람 속에 소슬히 차올라
나무들도 함께 환희로 흔들리는지
팔을 뻗어 산 가득 꽃잎을 흩뿌리고 있었어요
사월이었어요. 황홀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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