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당신 - 도종환 *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 도종환* 2008.12.07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 (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 도종환* 2008.10.25
가을 저녁 - 도종환 * 가을 저녁 - 도종환 기러기 두 마리 날아가는 하늘 아래 들국화는 서리서리 감고 안고 피었는데 사랑은 아직도 우리에게 아픔이구나 바람만 머리채에 붐비는 가을 저녁 * 도종환 시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랜덤하우스 도종환* 2008.10.16
가을 사랑 - 도종환 * 가을 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 도종환* 2008.10.07
다시 가을 - 도종환 * 다시 가을 - 도종환 구름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덜 관심을 보이며 높은 하늘로 조금씩 물러나면서 가을은 온다 차고 맑아진 첫 새벽을 미리 보내놓고 가을은 온다 코스모스 여린 얼굴 사이에 숨어 있다가 갸웃이 고개를 들면서 가을은 온다 오래 못 만난 이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 도종환* 2008.09.24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마음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 도종환* 2008.09.09
햇살 좋은 날 - 도종환 * 햇살 좋은 날 - 도종환 봄 햇살이 참 좋습니다. 진달래꽃이 연분홍 꽃잎을 스스로 열게 하는 투명한 햇살입니다. 백목련 흰 꽃봉우리의 눈을 뜨게 하는 맑은 햇살입니다. 제비꽃이 수줍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소리 없이 그쪽으로 고개를 들게 하는 밝은 햇살입니다. 꽃나무에게 좋은 햇.. 도종환* 2008.08.28
저녁노을 - 도종환 * 저녁노을 -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대의 단층 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가을산을 .. 도종환* 2008.08.25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도종환 *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도종환 말없이 마음이 통하고 그래서..... 말없이 서로의 일을 챙겨서 도와주고 그래서 늘 서로 고맙게 생각하고 그런 사이였으면 좋겠습니다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지만 바람을 막아주고는 그 자리에 늘 그대로 서 있는 나무처럼 늘 그대와 나도 그렇게 있으면 .. 도종환* 2008.08.20
봉숭아 - 도종환 * 봉숭아 -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잎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 속에 내가 네 꽃잎 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 것이냐 그리움도 .. 도종환*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