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시 모음 * 봄밤 - 박형준 달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 누가 사다리 좀 다오 홀로 빈방에 앉아 앞집 지붕을 바라보자니 바다 같기도 하고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결 같기도 하고 달이 내려와 지붕에 어른거리는 목련, 꽃 핀 자국마다 얼룩진다 이마에 아프게 떨어지는 못자국들 누구의 원망일.. 시인 詩 모음 2018.04.06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 안도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 - 안도현 일생 동안 나무가 나무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어둠을 반반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섞어서 자기가 살아온 꼭 그만큼만 그늘을 만드는 저 나무가 나무인 것은 그늘이라.. 안도현* 2016.01.04
안도현 동시 모음 * 호박꽃 - 안도현 호호호호 호박꽃 호박꽃을 따버리면 애애애애 애호박 애호박이 안 열려 호호호호 호박전 호박전을 못 먹어 * * 배꼽시계 (배) 배가 고프니? (꼬) 꼬르륵꼬르륵 (ㅂ) 밥 먹어야 할 (시) 시간이라고? (계) 계산 하나는 잘하네 * * 소나기 집으로 뛰는 아이들 아이들보다 먼저 .. 동시 2015.07.24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드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안도현* 2014.09.25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가랑 연애 얘기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마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 안도현* 2014.06.20
그리운 여우 - 안도현 * 그리운 여우 - 안도현 이렇게 눈 많이 오시는 날 밤에는 나는 방에 누에고치처럼 동그랗게 갇혀서 희고 통통한 나의 세상 바깥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 세상에도 눈이 이렇게 많이 오실 것인데 여우 한 마리가, 말로만 듣던 그 눈도 털도 빨간 여우 한 마리가 나를 홀.. 안도현* 2013.06.03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 안도현 * 국화꽃 그늘과 쥐수염붓 - 안도현 국화꽃 그늘이 분(盆)마다 쌓여 있는 걸 내심 아까워하고 있었다 하루는 쥐수염으로 만든 붓으로 그늘을 쓸어 담다가 저녁 무렵 담 너머 지나가던 노인 두 사람과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이 국화꽃 그늘을 얼마를 주면 팔 수 있느냐고 물었다 또 한 사람.. 안도현* 2013.04.03
매화꽃 목둘레 - 안도현 * 매화꽃 목둘레 - 안도현 수백 년 전 나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마을에 나타난 나 어린 계집 하나를 지극히 사랑하였네 나는 계집을 분(盆)에다 심어 방안에 들였네 하루는 눈발을 보여주려고 문을 열었더니 계집은 제 발로 마루 끝으로 걸어 나갔네 눈발은 혀로 계집의 목을 빨고 핥았.. 안도현* 2013.04.03
북항 - 안도현 * 일기 - 안도현 오전에 깡마른 국화꽃 웃자란 눈썹을 가위로 잘랐다 오후에는 지난여름 마루 끝에 다녀간 사슴벌레에게 엽서를 써서 보내고 고장 난 감나무를 고쳐주러 온 의원(醫員)에게 감나무 그늘의 수리도 부탁하였다 추녀 끝으로 줄지어 스며드는 기러기 일흔세 마리까지 세다가 .. 안도현* 2012.08.09
늙은 정미소 앞을 지나며 - 안도현 * 늙은 정미소 앞을 지나며 - 안도현 왼쪽 어깨가 늙은 빨치산처럼 내려앉았다 마을에서 지붕은 제일 크지만 가재 도구는 제일 적다 큰 덩치 때문에 해 지는 반대쪽 그늘이 덩치만큼 넓다 살갗이 군데군데 뜯어진 덕분에 숨쉬기는 썩 괜찮다 저녁에는 나뒹구는 새마을 모자를 주워 쓰고 .. 안도현* 2011.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