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이 오면 - 안도현 * 구월이 오면 - 안도현 그대 구월이 오면 구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 안도현* 2009.08.26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 바닷가 우체국 - 안도현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 안도현* 2009.07.31
공양 - 안도현 * 공양 - 안도현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 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 울음 서른 되 * * 안도.. 안도현* 2009.07.28
직소폭포 - 안도현 * 직소폭포 - 안도현 저 속수무책, 속수무책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필시 뒤에서 물줄기를 훈련시키는 누군가의 손이 있지 않고서야 벼랑을 저렇게 뛰어내릴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오 물방울들의 연병장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가 없소 저 강성해진 물줄기로 채찍을 만들어.. 안도현* 2009.07.15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 안도현 *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 안도현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 내 몸에 들어올 때가 있네 도꼬마리의 까실까실한 씨앗이라든가 내 겨드랑이에 슬쩍 닿는 민석이의 손가락이라든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와서 나를 갈아엎는 치통이라든가 귀틀집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라든가 .. 안도현* 2009.07.01
화암사, 내 사랑 - 안도현 *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 안도현* 2009.06.03
섬 - 안도현 * 섬 - 안도현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 안도현* 2009.06.03
뜨거운 밤 - 안도현 * 뜨거운 밤 - 안도현 아, 고 잡것들이 말이여, 불도 한 점 없는 거 뭣이냐 깜깜한 묏똥가에서 둘이서 불이 붙어가지고는 누가 왔는지, 누가 지나가는지, 누가 쳐다보는지 모르고 말이여, 여치는 싸랑싸랑 울어댔쌓는디 내가 어떻게 놀라부렀는가 첨에는 참말로 산 귀신들이 아닌가 싶어 .. 안도현* 2009.06.03
마지막 편지 - 안도현 * 마지막 편지 - 안도현 내 사는 마을 쪽에 쥐똥 같은 불빛 멀리 가물거리거든 사랑이여 이 밤에도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마음인 줄 알아라 우리가 세상 어느 모퉁이에서 헤어져 남남으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듯 서로 다른 길이 되어 가더라도 어둠은 또 이불이 되어 우리를 덮고 슬픔.. 안도현* 2009.06.03
맨 처음 연밥 한 알 속에 - 안도현 * 맨 처음 연밥 한 알 속에 - 안도현 그대 연꽃이 피는 것을 보았는가 한 송이 물 위로 떠오르며 둥 또 한 송이 물 위로 떠오르며 둥둥 연꽃이 피는 소리 들어보았는가 그대 그때 두 귀를 열고 있었는가 이세상이 아파서 이세상의 모든 상처 위에 상처의 쓰라림 위에 쓰라림의 기쁨 위에 연.. 안도현* 200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