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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새 - 유승도

효림♡ 2008. 6. 30. 08:11

* 나의 새 - 유승도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 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

 

* 웃

웃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보면 잔잔한 빛이 세상 속으로 번져가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밝히는 등불을 가만히 보면 웃음이 사람 사이로 퍼져나가고 있다

 

밤하늘의 별빛을 가만히 보면 웃음이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

* 유승도시집[작은 침묵을 위하여]-창비,1999

 

* 여름꽃

그리움이 쌓여 피어나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장년의 여인으로 다가온다

맨가지의 애처로운 끝에 피어 숲의 푸르름을 불러내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나뭇잎 사이에서 드러나지 않게 웃는다

울긋불긋 커다란 소리로 거친 산야를 수놓는 것이 봄꽃이라면, 여름꽃은 작은 몸짓으로 소리 없이 피고 또 진다 *

 

* 큰 손

흙도 씻어낸 향기나는 냉이가 한무더기에 천 원이라길래
혼자 먹기엔 많아 오백 원어치만 달라고 그랬더니

아주머니는 꾸역꾸역, 오히려 수줍은 몸짓으로
한무더기를 고스란히 봉지에 담아 주신다

자신의 손보다 작게는 나누어 주지 못하는 커다란 손
그런 손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아득히 잊고 살았었다 *

* 유승도시집[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창작과비평사

 

* 침묵

골바람 속에 내가 있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으므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골짜기 외딴집 툇마루에 앉아 한 아낙이 부쳐주는 파전과 호박전을 씹으며 산등성이 너머에서 십년 묵언에 들어가 있다는 한 사람을 생각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속에 내가 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 의문

마음의 흐름을 따라 숲 속 길을 걸었다 작은 날개에 햇살 같은 깃털을 단 새가 나를 보고는 화들짝 나무 사이로 날아간다
깃털이 허공에서 떨어진다

나는 새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돌 하나를 발로 차 산밑으로 굴렸다
각 진 돌에 나무가 맞아 껍질이 찢겼다 이 겨울에

나는 돌과 나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토끼와 눈이 부딪쳤다 행여 달아날까 걸음을 멈추니,
토끼는 그 동그란 눈에 하나 가득 겁을 담고 수풀을 뛰어 넘으며 달아난다

나는 토끼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걸까 *

* 문태준엮음[포옹,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해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