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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뭐냐구요 - 황지우

효림♡ 2009. 4. 30. 08:16

* 아, 이게 뭐냐구요 -'전화 이야기'풍으로 황지우 

 

  절망의 시한폭탄은 아니구요. 디 임파서블 드림예요. 가방이죠. 열어보라구요. 그러죠, 뭐. 사건은 없어요. 아, 이게 뭐냐구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죠. 아편은 아니구요. 온건하지요. 다른 저의는 없어요, 필독서예요. 은유가 전혀 없구요. 알리바이에 대한 일종의 옹호에 불과해요. 아, 이건 또 뭐냐구요.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이죠. 이젠 굶는 사람은 없잖아요. 외채는 할 수 없어요. 1인당 70만 원이라메요. 몇 사람이라도 집중적으로 배부르게 해야조. 그게 성장의 총량을 명시적으로 늘리는 방법이죠. 그리고 1천 불 소득의 연자매를 끝없이 돌게 해요. 미래에의 환상은 현재의 환멸을 상쇄하죠. 잔뜩 불어넣으세요. 중진국이잖아요. 워커 대사가 뭐, 총독인가요. 그렇지만 운전수들이 영어를 너무 못해요. 필리핀 보세요. 이건 뭐냐구요. 어려워요. 오리지날이죠.  

Joseph Gable, Lafausse conscience예요. 지난번 프랑스 지사에 나간, 장사하는 친구가 보내준 건데요. 제목이 섹시해서요. 내용은, 조ㅈ도, 모르겠어요. 다만, '19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라진 나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그리고 1968년 뉴욕에서 위로받을 길 없이 죽어간 나의 아버지를 추모하며, 나는 이 책을 모든 광신에 반하여 바친다'는 헌사가, 존나게, 좋데요. 유태인들인가 봐요. 케스키들.  체제를 지지하느냐구요. 난, 사시사철 하루 24시간 내내 내 큰골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샅샅이 검열하고 있다구요. 절망이죠. 턱이 둥글고 미남형, 키 175cm 가량, 서울 말씨, 이런 사람을 본 적이 나는 결코 없어요. 우리 연대(年代)에 인쇄된 문학은 이미 문학이 아니라고 난 주장하고 싶어지네요. 나는 모든 급소마다. '노동자'는 '근로자'로, '계급'은 '계층' 혹은 '사회구조'로, '폭력'은 '물리적 힘'으로, '투쟁'은 '대립' 혹은 '갈등'으로 고쳐 번역하곤 해요. 물론예요.  전 문교부장관이 우리에게 이데올로기의 송아지 고기를 포식시켜준 건 사실예요. 거세된 고기는 부드럽잖아요. 최근, 레이건 대통령의 정치기조에는 서부활극 같은 데가 있지 않아요. 낸시 여사와의 키스씬은, 진짜, 연기라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잖아요. 씹할, 전라도년이 서울 온 지 1년도 못 되어 서울말 찍찍 쓰는 건 정말 못 들어주겠어요. 캄플렉스예요. 그래요. 이성(理性)은 1973년 10월 2일, 구(舊) 서울 문리대 동숭동 교정에서 사망했죠. 금서(禁書)가 총 몇 권이죠. 세종문화회관 뒤뜰 늦가을 나뭇가지 사이로 저무는 저녁 햇살이 너무너무 황홀해요. 아까부터 왜  여기서 계속 얼쩡얼쩡했냐구요. 이승의 끝 같애요. 이제 우리들, 절망의 뇌관을 다, 제거했나요. 터질 것 같은, 우리들, 절망의 안전핀을, 절망의 노리쇠, 절망의 가늠자, 기타 등등을. 이게 뭔지 아직도 모르세요. *

 

* 황지우시집[겨울ㅡ나무로부터 봄ㅡ나무에로]-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