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아무래도 무보다 무우가 - 김선우
무꾸라 했네 겨울밤 허리 길어 적막이 아니리로 울 넘어오면
무꾸 주까? 엄마나 할머니가 추임새처럼 무꾸를 말하였네
실팍하게 제대로 언 겨울 속살 맛이라면 그 후로도 동짓달
무꾸 맛이 오래 제일이었네
학교에 다니면서 무꾸는 무우가 되었네 무우도 퍽 괜찮았네
무우-라고 발음할 때 컴컴한 땅속에 스미듯 배이는 흰 빛
무우밭에 나가본 후 무우- 땅속으로 번지는 흰 메아리처럼
실한 몸퉁에서 능청하게 빠져나온 뿌리 한 마디 무우가 제격이었네
무우라고 쓴 원고가 무가 되어 돌아왔네 표준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데
무우-라고 슬쩍 뿌리를 내려놔야 ‘무’도 살만 한 거지
그래야 그 생것이 비 오는 날이면 우우 스미는 빗물을 따라
잔뿌리 떨며 몸이 쏠리기도 한 흰 메아리인 줄 짐작이나 하지
무우밭 고랑 따라 저마다 둥그마한 흰 소 등 타고 가는 절집
한채씩이라도 그렇잖은가
칠흑 같은 흙 속에 뚜벅뚜벅 박힌 희디흰 무우寺
이쯤 되어야 메아리도 제 몸통을 타고 오지 않겠나
* 대천바다 물 밀리듯 큰물이야 거꾸로 타는 은행나무야
그렇게 오는 사랑 있네
첫눈에 반하는 불길 같은 거 말고
사귈까 어쩔까 그런 재재한 거 말고
보고 지고 그립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대천바다 물 밀리듯 솨아 솨아아아아
온몸의 물길이 못 자국 하나 없이 둑방을 넘어
진액 오른 황금빛 잎사귀들
마지막 물기 몰아 천지사방 물 밀어가듯
몸이 물처럼
마음이 그렇게
너의 영혼인 내 몸도 그렇게 *
* 나생이
나생이는 냉이의 내 고향 사투리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나생이꽃 피어 쇠기 전에
철따라 다른 풀잎 보내주시는 들녘에
늦지 않게 나가보려고 조바심을 낸 적이 있다
아지랑이 피는 구릉에 앉아 따스한 소피를 본 적이 있다
울 엄마도 할머니도 순이도 나도
그 자그맣고 매촘하니 싸아한 것을 나생이라 불렀는데
그 때의 그 '나새이'는 도대체 적어볼 수가 없다
흙살 속에 오롯하니 흰 뿌리 드리우듯
아래로 스며드는 발음인 '나'를
다치지 않게 살짝만 당겨 올리면서
햇살을 조물락거리듯
공기 속에 알주머리를 달아주듯
'이'를 궁글려 '새'를 건너가게 하는
그 '나새이',
허공에 난 새들의 길목
울 엄마와 할머니와 순이와 내가
봄 들녘에 쪼그려 앉아 두 귀를 모으고 듣던
그 자그마하나 수런수런 깃 치는 연두빛 소리를
그 짜릿한 요기(尿氣)를 *
* [시가 내게로 왔다 3]-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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