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 20 -감傳 - 김용택
감들이 불쌍했다.
아버님은 초가을부터
행여나 행여나 하시며
거간꾼들을 기다리다
감들이 다 익어가도
팔릴 기미가 없자
큰놈만 대충대충 골라 따도
감은 끝이 없고,
첫서리가 내리고
감들이 사정없이 물러지기 시작하자
밤 터는 긴 장대로
감나무를 두들겨패댔다.
장대를 힘껏힘껏 휘두를 때마다
감들은 후드득 떨어져
박살이 나고 으깨어졌다.
아버님은
이 웬수놈의 감
이 웬수놈의 감
많아도 걱정 적어도 걱정
이 썩을 놈의 감, 하시며
있는 힘을 다하여 두들겼다.
감가지가 찢어지고
감들이 떨어져 물개똥같이 되면
어머님은
이 아깐 것
이 아깐 것, 하시며
그래도 성한 놈은 광주리에
가득가득 담으셨다.
그러시는 어머님을 보고 아버님은
버럭버럭 화를 내셨지만
어머님은 떨어지는 감을 맞으며
감쪼가리라도 만드신다며
정신없이 감을 주워담아
집에 갈 때
강변 바위 위에 벌겋게 널었다.
텔레비에선
감과 농촌 풍경을 비춰주며
가을 정취를 한껏 돋웠지만
그럴 때마다 아버님은
끙끙 앓으시며
저런 오사헐 놈들
감 땜시 사람 환장허는지는 모르고
저 지랄들 한다고
텔레비를 꺼버리곤 하셨다.
흥정이 안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두 동도 넘는 감을 밭떼기로
4만원도 비싸다며
팔기 싫으면 그만두라는
감장수들 말에
아버님은 저녁땐 팔고
이튿날 아침이면
혼자 화를 내시며
감을 썩혔으면 썩혔지
팔지 않겠다고
앞산 벌건 감을 보시며
빈 지게를 짊어졌다
벗었다 하시며
어쩔 줄을 몰라하시곤 했다.
초가을 감들은 온 밭을
붉게 물들였었다.
올 같은 가뭄에도 어찌나 감이 열렸던지
감가지가 찢어져라 휘어지면
아버님은 일 나가시며
작대기를 만들어
감가지를 받쳐주곤 하셨다.
앞산 감밭은 아버님께서 고욤씨를 뿌려
해마다 몇그루씩 접을 붙여
애지중지 가꿔
넓은 밭가엔 온통 감나무였다.
아버님은 이따금 익어가는 감을 보시며
"보소, 인자 저근 감나무골이네"하시며
동네 어른들께
자랑을 하시곤 하였다.
가을엔 감빛이 앞강물을
붉게 물들이고
안개 걷히는 아침, 감들은
아름다웠었다.
어머님이 밭일을 하시다 잘못하여
어린 감나무 순을 하나만 다쳐도
아버님은 몇날 며칠이고
화를 내시며
어머님을 나무라시면
어머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좋은 놈을 골라
밤을 새워 감을 깎아도
감은 감이 아니라 걱정으로 쌓였다.
강변 바위들마다 벌겋게 감쪼가리들이 널리고
빨랫줄이나 빈터 뽕나무 감나무에는
감껍질들이 붉게 널려 말랐다.
두엄자리에는 감들이 썩어나고
돼지도 감을 먹지 않았다.
어머님은 앞산 감만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하시며
밤을 새워 감을 깎고
아버님은 새벽 내내
곶감을 꼬챙이에 꿰어 달았다.
감들이 불쌍했다.
감나무 밑은 벌겋게 감들이 널리고
아이들은 감을 가지고
팔매질이나
강변에서 야구를 했다.
감이 몽둥이에 맞아 안타가 될 때마다
감은 박살이 났다.
아이들은 홈런을 외치고
아버님은 어둑거려 징검다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감을 져날랐다.
감들은 여기저기서
찢어진 감가지에 매달린 채
쭈그러들고 까마귀밥이 되고 물러빠지며
추운 겨울을 맞이했다.
감들이,
감들이 불쌍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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