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1~6 - 이정하

효림♡ 2009. 6. 25. 08:25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序 - 이정하   

한때는 나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결코 이야기 할 수 없는

누군들 사랑하는 여자가 없었겠냐만은

한때 나에게는 온몸을 다 바쳐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지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한번도 말한 적 없는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1  

그대는 늘 내게

사랑보다 먼저 아픔으로 다가왔지요

꽃이 채 피기도 전에 꽃잎이 떨어지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내 사랑을 받아 줄 수 없는

그대의 현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를 사랑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나는

그대와 사랑을 나누지도 못했기에

헤어질 수도 없었던 나는 그냥

멀리서 그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지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이리도 가슴 아픈 일인가

그대를 알고서부터

나는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2  

꼭 말을 해야 상대방의 마음이 짐작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대가 내 사랑을 느끼지 못하진 않았을 테지요

날마다 내 마음을 떼어내 상처투성이인 이 가슴을 모른다하진 않겠지요

사랑하지 않는 것이 피차에게 이롭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 마음이 닿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솟아나는 그대 생각을 난들 어찌합니까


내가 그대를 원하면 원할수록 더욱 슬픔이 커질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맺지 못할 사랑이라면 보내고 잊어야 하는 것이 옳다는 것도 모르진 않습니다

잊혀지지 않는다 치더라도 잊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것도 지극히 상식에 속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난 그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아직껏 그대를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입니다

사랑이란 이렇게 모르는 것 투성이입니다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3  

그대는, 그대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대가 안고 있는 현실 때문에

내 사랑을 받아줄 수 없다 했습니다

나를 위해서라도 그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는 느꼈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의 그 슬픈 표정을


그대여

그런 당신이기에 나는 더욱 당신을 놓칠 수 없습니다

내 사랑을 원하면서도 당신이 처한 현실 때문에

당신이 책임져야 할 그 어떤 부분 때문에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 없다면

내가 그대를 어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은 희생하겠다는

그대의 그 고운 마음씨를 알고서야

어찌 당신을 멀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은 어찌돼도 그만, 상대방을 위해 떠나려는 당신을

나는 이제 전보다 더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의 아픔을 밟고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

내 비록 큰 힘은 없을지라도 그대가 힘겨울 때

그대가 잠시 앉아 쉴 수 있는 나무의자가 되어주는 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4  

사랑이란

꼭 가까이 다가서서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고, 마주앉아 차를 마셔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는 말 못할 겁니다

숲속 길을 둘이 걸으며 도란도란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습니다


세상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욱 도타운 사랑이 있습니다

서로 만나기는 어려워도 매일 만난 것처럼

그대를 가슴에 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으나 그 떨어져 있는 거리가

아무 문제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지 못해도

가까이 있지 못해도 내가 그대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까닭은

그대의 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마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늘 그대의 마음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5  

세상에는, 사랑이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때로는 슬픔만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그대여, 나는 그대를 알고부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대여

난들 왜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루에도 수백 번씩 그대 가까이에 다가가고 싶지만

먼 산에 지는 노을처럼 물끄러미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것은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감으로 해서

그대에게 또 하나의 짐이 되기 싫은 까닭입니다

지금 그대가 지고 있는 짐만도 벅찰 것인데 나마저 짐이 된다면

그대로 폭싹 주저앉을까 두려운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그대여, 나는 날마다 그대에게 부는 바람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하나도 무겁지 않은

날마다 내 마음 거기에 머무는 바람입니다 

 

* 내 작고 초라한 사랑 이야기 6  

봄이 왔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 새 담벼락마다 개나리가 새움을 틔웠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진달래, 철쭉, 목련 들도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겠지요

유난히 눈이 많았던 올 겨울도 그렇게 지나갔군요

그대 얼굴 한번 못보고 올 겨울도 그냥 그렇게 지나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