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하*

허수아비 - 이정하

효림♡ 2009. 6. 25. 08:17

* 허수아비 1 - 이정하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 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 


* 허수아비 2  
 

살아가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것이 또

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허수아비는. 매번 오라 하기도 미안했던 허수아비는 
차마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한

곳만 본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 허수아비, 그 이후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운다 
늙고 초라한 몸보다도 
자신의 존재가 서러워 
한없이 운다 

한낮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 있지만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목이 메인다 

속절없이 무너져 
한없이 운다 

 

* 이정하시집[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