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사랑의 허물 - 윤후명

효림♡ 2010. 2. 22. 08:03

* 사랑의 허물 - 윤후명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이 들어서도 변하지 않는

오직 하나의 마음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헤어지는 연습만으로만 살아왔다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하면서도

그 나무 아래

그 꽃 아래

그 새 울음소리 아래 모두

사랑의 허물만 벗어놓고

나는 어디로 또 헤매고 있을까

언제까지나 이루지 못할

하나의 마음임을 알아

나로부터도 영원히 떠나야 할까

그래야 할까 사랑이여 *

 

* 곰취의 사랑 

눈 속에서도 싹을 내는 곰취
앉은 부채라고도 부른다
겨울잠에서 갓 깬 곰이
어질어질 허기져 뜯어먹고
첫 기운 차린다는
내 고향 태백산맥 응달의 고취 여린 잎
동상 걸려 얼음 박인 뿌리에
솜이불처럼 덮이는 눈
그래서 곰취는 싹을 낸다
먹거리 없는 그때 뜯어먹으라고
어거 뜯어먹으라고 힘내라고
파릇파릇 겨울 싹을 낸다
눈 오는 겨울밤 나도 한 포기 곰취이고 싶다
누군가에게 죄 뜯어먹혀 힘을 내줄 풀

 

* 마음 하나 등불 하나

어두운 마음에 등불 하나
헤매는 마음에 등불 하나
멀리 멀리 떠난 마음에 등불 하나
할퀴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찢어진 마음에 등불 하나
무너진 마음에 등불 하나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도 있다
어느 마음속에도
하늘 있고
땅 있고
찰나와 영겁 닿는 빛 있음을
등불 걸어 밝히어라
보이지 않는 마음도 발가혀
그 애끓는 사랑 하나 환하게 환하게
뭇 별까지 사뭇 밝히어라

 

* 길

우리가 서로 아득히 멀 듯이
나조차 나로부터 아득함을
알리라
이 세상 그립고 그리워
오히려 피해가는 발길
버리지 못해 우짖는 마음이 욕스럽구나
이 내 몸에
말가죽 쇠가죽이라도 매겨
찢어질 때까지 치고 또 치면
마침내 이르련만
아직도 누구의 꽃가슴 꽃입술 있어
이 길 이리 더디게 하는가 *

 

* 마침내 꽃이여

사랑을 알고 나서

꽃과 함께 피어난 모습

꽃이 졌는데도 그대로 있다

사랑이

있음과 없음 사이를 오간 때문

넋이 오간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있음과 없음도 하나의 모습

마침내 꽃이여

헤어짐 없는 하나의 마음을

받든 꽃이여 * 

 

*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이제야 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너무 늦었다

그렇다고 울지는 않는다

이미 잊힌 사람도 있는데

울지는 못한다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모두 떠나고 난 뒤면

등불마저 사위며 내 울음 대신할 것을

이제야 너의 마음에 전했다

너무 늦었다 캄캄한 산 고갯길에서 홀로 

* 윤후명시화선집[사랑의 마음, 등불 하나]-랜덤하우스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