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꽃피는 달밤에 - 윤곤강

효림♡ 2010. 3. 25. 08:36
* 꽃피는 달밤에 - 윤곤강 

빛나는 해와 밝은 달이 있기로
하늘은 금빛도 되고 은빛도 되옵니다


사랑엔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기로
우리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있으오이다
 
꽃피는 봄은 가고 잎피는 여름이 오기로
두견새 우는 달밤은 더욱 슬프오이다
 
이슬이 달빛을 쓰고 꽃잎에 잠들기로
나는 눈물의 진주구슬로 이 밤을 새웁니다
 
만일 당신의 사랑을 내 손바닥에 담아 
금방울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다면 

아아, 고대 죽어도 나는 슬프지 않겠노라 *

 

* 아지랑이  

머언 들에서

부르는 소리

들리는 듯


못 견디게 고운 아지랑이 속으로

달려도

달려가도

소리의 임자는 없고


또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

머얼리서

더 머얼리서

들릴 듯 들리는 듯.....

 

* 해바라기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앞에 서라 


해바라기꽃 앞에 서서

해바라기꽃과 해를 견주어 보라


끓는 해는 못 되어도

가을엔 해의 넋을 지녀

해바라기의 꿈은 붉게 탄다


햇살이 불처럼 뜨거워

불열에 눈이 흐리어 
보이지 않아도, 우리 굳이

해바라기 앞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해를 보고 살지니 


벗아! 어서 나와

해바라기 꽃앞에 서라 

 

* 입추(立秋)
소리 있어 귀 기울이면
바람에 가을이 묻어 오는

바람 거센 밤이면
지는 잎 창에 와 울고

다시 가만히 귀 모으면
가까이 들리는 머언 발자취

낮은 게처럼 숨어 살고
밤은 단잠 설치는 버릇

나의 밤에도 가을은 깃들어
비인 마음에 찬 서리 내린다

 

* 나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
 

 

 

* 윤곤강(尹崑崗) 시인 

-1911~1949 충남 서산 출생

-시집- 대지(大地), 만가(輓歌), 동물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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