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
너는 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편안한 먹이를 찾아
먹이를 주는 사람들 찾아
많은 늑대가 개의 무리 속으로 떠나가는데
너는 왜 아직 산골짝 바위틈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불타는 눈빛을 버리지 않는 것일까
번개가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며 달려가던
날카로운 빛으로 맹수들을 쏘아보며
들짐승의 살 물어뜯으며
너는 왜 아직도 그 눈빛 버리지 않는 것일까
너는 왜 바람을 피하지 않는 것일까
여름날의 천둥과 비바람
한겨울 삭풍 피할 안식처가
사람의 마을에는 집집마다 마련되어 있는데
왜 바람 부는 들판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오늘은 사람들 사이에서 늑대를 본다
인사동 지나다 충무로 지나다 늑대를 본다
늑대의 눈빛을 하고 바람 부는 도시의 변두리를
홀로 어슬렁거리는 늑대를 본다
그 무엇에도 길들여지지 않는 외로운 정신들을 *
* 등잔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으름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하랴
욕심으로 타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
* 도종환시집[부드러운 직선]-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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