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낙동강 - 도종환

효림♡ 2013. 5. 6. 18:33

* 낙동강 - 도종환

봄마다 불어내리는 낙동강을
구포벌에 이르러 넘쳐넘쳐 흐르네
포석은 그렇게 노래했었지
슬퍼서 아름다운 소설 속에서였지
동지 한 사람 땅에 묻고 구포역을 지나
굽이굽이 칠백리 봄의 낙동강을 따라간다
사랑의 힘으로 혁명가가 되어가는 여인이 있었지
형평운동을 하며 참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했었지
시를 쓰는 아내와 네 살짜리 아들을 두고 너는 갔지
강가의 넓은 들품 안에는 무덤무덤 마을이 있었고
갈 때보다 더 몇배 긴 행렬이 마을 어귀부터
강언덕을 향하여 뻗쳐나오고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다 했지
긴 외올베자락에 갔구나 너는 갔구나
밝은 날 해맞이춤에는 네 손목을 잡아볼 수 없구나
그렇게도 쓰여 있었다 했지
죽어서도 네 몸은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고
수없이 많은 깃발만 나부꼈지
참교육 참세상 그날까지 우리도 네 뒤를 따르겠다고
수십 개의 만장이 철사줄로 얽어맨 교문 밖에 휘날렸지
싸움 속에서 병을 얻고 병 속에서도 너는 싸웠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많이도 슬퍼했지
그해 식민지의 아침에 푸뜩푸뜩 첫눈이 날리던 날처럼
기차가 들녘을 다 지나갈 때까지 나도
하염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며 너를 생각했지
낙동강을 따라오면서 가장 밑바닥에 터져나오는
설움과 분노를 강물에 뿌리며 나도 많은 결심을 했지
식민지에 태어나 쓴 글이어서 한이 많았던 글들의 여백을
우리가 새롭게 써넣어야 할 가장 굳센 언어들을 생각했지
오리떼가 날아오르는 낙동강 위에
봄풀이 돋는 강둑 위에 그날 수많은 시들을 던졌지
이땅에서 살고 이땅에서 죽어야 할 우리의 목숨이
천년을 산 낙동강 만년을 산 낙동강처럼
빼앗길 수 없는 것이어서 많이 서러웠지
네가 죽으면서 남긴 보고 싶은 이름들이
아직 살아서 어떻게 사는가
해마다 낙동강물을 따라 되살아오며 너는 보겠지
흘러흘러 봄이면 우리 가슴을 적시겠지
네가 떠난 낙동강, 굽이굽이 칠백리 너의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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