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꽃구경 - 차승호

효림♡ 2015. 2. 10. 09:30

* 꽃구경 - 차승호

하동 매화마을 꽃 좋다는 소문 당진 땅 세류리 늙은이들
귀에까지 들어가 한식과 곡우 사이 관광버스 대절하여
꽃구경 간다

명절날 때때옷 장만하듯 점퍼도 사고 맘보바지도 사고
돼지고기 두어 관 수육도 하고 트랙터 몰던 구닥다리
선글라스 챙겨 매화처럼 환한 얼굴 꽃구경 간다

 

평균 칠십 넘어가는 나이 잊었던가, 잊고 싶었던가

청춘을 돌려다오 소싯적 신명으로 들썩들썩 관광버스

춤춰가며 꽃구경 간다

 

웅숭깊은 예당평야 짊어질 줄만 알았지 홍어 불알, 물개 불알

먹어본 적 없어서 소주 한 잔 견디지 못하는 전립선,

자지 틀켜쥐고 주책부리며 꽃구경 간다

 

기사양반, 오줌 누고 갑시다

 

동작 굼떠서 바짓가랑이 좀 지린들 어떤가,

척척하고 쿰쿰하면 또 어떤가 내년에는 남해까지 해남까지

꼭 같이 가보자 다짐하며 꽃구경 간다

 

* 밥을 모시다

요양원에서는
숟가락과 입의 거리는 멀다
오른손잡이든 왼손잡이든
버선발로 손님 맞듯
두 손으로 밥을 모신다
한 생애가 저물어가는 길목
부들부들 떨리는 손들이
밥 앞에서는 공손해진다
저 떨림 중에는 틀림없이
밥에게 들판에게
사나웠던 손도 있으리라
흐린 눈 크게 뜨고
식탁에 둘러앉은 노인들
흘린 밥덩이까지 살뜰하게 주워가며
밥을 먹는다, 밥을 모신다

 

* 소주잔에 길을 묻다 
지난해 배추 농사 죽 쒀서 개 줬다고,
트랙터로 갈아엎으며 내년부터 배추 심으면 사람이 아니다 올해는 두어 두두둑 먹을 거만 심었더니 밭뙈기 포기당 삼천 원 유사 이래 꿈만 같은 배추 값에 거푸 한라산 빨아대는 오씨는 농투성이다
어허, 그런 결심으로 담배나 끊으면 건강이나 좋아지지 그러길래 사람은 지조가 있어야 되는 벱이여 갈아엎을 때 갈아엎더라두 초지일관, 한두 번 속는 것도 아니구 말이여 슬슬 염장 지르는 마씨도 요지부동 쌀값 앞에 논농사 재미 못 본 농투성이다
배추농사꾼 오씨나 논농사꾼 마씨나 수십 년 전 하늘 쳐다보며 기우제 지내던 자세로 가격변동 바라보며 담배만 빨아대는 농투성이다
배추고 지랄이고 내년엔 뭘 심어야 된다나?
이 사람, 배추를 심을지 지랄을 심을지는
자네 앞에 소주잔 보고 물어봐야지
왜 나 보고 물어본다나?


* 연적들 

자식들 십시일반 건축비 모아
고향 노인네 집수리를 해드렸다.
어리보기 나야

문짝 하나 달은 것밖엔 없지만

아담하게 양철집 개보수하고
돼지 잡아 집들이하는 날
세류리 슈퍼를 나온 동네 노인네 서넛
가루비누 상자 같은 걸
한 개씩 들고 오는 것이었다

노인네 불알친구들 늘그막엔

떡줄 사람 생각도 않는, 그래서 쌍화차만 들이켜는

양지다방 양 마담 문고리들

뭐 사올 게 있어야지, 축하 드리네

마루 끝에 한 상자씩 놓여서

더도 덜도 아닌 마음들
돼지껍데기처럼 쫀득쫀득한 마음들을
나는 무엇이라 해야 하나
평생지기 우정이라 하면 될까
곁에서 지켜보는 어머니도 마음 기꺼워
해바라기처럼 웃으시는데,
양 마담 안 불렀능감, 워째 안 뵈능 거 같은디?
어허 이 사람, 대체 양 마담이 누구여?
양지다방 간판만 뵈두 질색팔색
십 리는 돌아댕기는 사람 보구 *

* 김용택[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 옜다, 물 한 바가지 

평소에는 뭔가, 지집애 마냥

낯간지럽기도 하고 체질에 맞지도 않아서 뭔가 말랑말랑한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다가 알싸한 술기운에 그것도 효도랍시고

 

어머니, 제발 덕분 오래오래 들판 지키셔야 되유

 

어머니라는 보통명사엔 뭔가 복받치는 게 있는가 말하다 보니 울컥해져, 팔십 구십까지 사시란 얘기 에두르느라 핸드폰 쥔 손 비장하게 떨리는 것이었는데

 

이런, 씨불알 중생을 봤나

염천에 고추 따느라 삭신이 다 녹아내리능구먼 그게 시방 늙은 에미헌티 헐 소리여

 

마음먹고, 효도(?)의 말 한마디 건네면서 뭔가 다감한 말씀 기대에 부풀었던 것이었는데,

아닌 밤중에 참 뒤통수 얼얼해지는 것이

소주 두 살짜리 술이 확, 깨더먼유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작령 - 이문재  (0) 2015.02.27
우리 살던 옛집 지붕 - 이문재  (0) 2015.02.26
복수초 - 노영임   (0) 2015.02.02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0) 2015.01.31
고향길 - 신경림   (0) 2015.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