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오늘의 결심 - 김경미

효림♡ 2017. 5. 22. 09:00

* 오늘의 결심 -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넜으되
다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창틀 먼지에 다치거나
내 어금니에 혀 물린 날 더 많았으되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
 

 

* 초승달 - 김경미

 

얇고 긴 입술 하나로

온 밤하늘 다 물고 가는

검은 물고기 한 마리

 

외뿔 하나에

온 몸 다 끌려가는 검은 코뿔소 한 마리

 

가다가 잠시 멈춰선 검정고양이

입에 물린

생선처럼 파닥이는

은색 나뭇잎 한 장

 

검정 그물코마다 귀 잡힌 별빛들

 

나도 당신이라는 깜깜한 세계를

그렇게 다 물어 가고 싶다 *

* 김경미시집[밤의 입국 심사]-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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