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밑 - 신경림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뒤돌아본다.
푸섶길의 가없음을 배우고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새소리의 기쁨을 비로소 안 한 해를.
비탈길을 터벅거리며 뒤돌아본다.
저물녘 내게 몰아쳐온 이 바람,
무엇인가, 송두리째 나를 흔들어놓는
이 폭풍 이 비바람은 무엇인가,
눈도 귀도 멀게 하는, 해도 달도
멎게 만드는 이것은 무엇인가.
자리에 누워 뒤돌아본다.
만나는 일의 설레임을 알고
마주 보는 일의 뜨거움을 알고
헤어지는 일의 아픔을 처음 안 한 해를.
꿈속에서 다시 뒤돌아본다.
삶의 뜻을 또 새로 본 이 한 해를.
* 신경림시집[달 넘세]-창비
* 새 아침에
간밤 이슥토록 눈이 오더니만
새 아침 밝은 햇살 안고
옛 친구 날 찾아오다
찌갤랑 끓거라 두고
이 골목 저 골목 눈을 밟는다
고드름 맺힌 지붕
정다워 창문을 기웃대면
거기 옛날에 듣던
낭랑한 토정비결 읽는 소리
세월은 솔나무 스치는 바람
삶은 댓돌에 쌓인 눈송이
문득 서러워 눈을 드니
친구의 허연 머리칼 착한 웃음
어느새 또 한 해가 갔구나
* 신경림 시전집 1-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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