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새 - 정호승 * 도요새 - 정호승 옥구염전에 눈 내린다 수차가 함부로 버려진 소금밭에 눈발이 빗금을 치고 지나가다가 무너진 소금창고 지붕 위에 힘없이 주저앉는다 나는 일제히 편대비행을 하며 허공 높이 무수히 발자국을 찍어대다가 외로이 소금밭에 앉아 울고 있다 이제는 아무도 내 눈물로 소.. 정호승* 2009.09.29
마음에 집이 없으면 - 정호승 * 마음에 집이 없으면 - 정호승 마음에 집이 없으면 저승도 가지 못하지 저승에 간 사람들은 다들 마음에 집이 있었던 사람들이야 마음에 집이 없으면 사랑하는 애인도 데려다 재울 수 없지 잠잘 데 없어 떠도는 사람 잠 한번 재워주지 못한 죄 그 대죄를 결코 면할 수 없지 마음에 집이 없.. 정호승* 2009.07.27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 정호승* 2009.07.27
정동진 - 정호승 * 정동진 - 정호승 밤을 다하여 우리가 태백을 넘어온 까닭은 무엇인가 밤을 다하여 우리가 새벽에 닿은 까닭은 무엇인가 수평선 너머로 우리가 타고 온 기차를 떠나보내고 우리는 각자 가슴을 맞대고 새벽 바다를 바라본다 해가 떠오른다 해는 바다 위로 막 떠오르는 순간에는 바라볼 수.. 정호승* 2009.07.23
인생의 맑은 차향기가 되라 - 정호승 * 인생의 맑은 차향기가 되라 - 정호승 등을 달아라 봄바람이 분다 등불을 밝혀라 봄비가 내린다 손을 잡아라 섬진강과 함께 춤을 추어라 지리산과 함께 지금은 하동 차나무에 새움이 돋는 거룩한 시간 푸른 빗줄기 사이로 찻잎도 푸르다 지리산은 아들을 키우듯 야생의 차나무를 키우고 .. 정호승* 2009.07.22
거위 - 정호승 * 거위 - 정호승 개나리 핀 국도에 차들이 달린다 할머니 한 분이 아까부터 허리를 구부리고 길을 건너지 못하고 서 있다 그때 할머니 뒤에 서서 개나리를 쳐다보고 있던 흰 거위 떼들이 뒤뚱뒤뚱 떼 지어 길을 건넌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달려오던 차들이 놀라 멈춰 선다 버스가 멈춰 서.. 정호승* 2009.07.22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 부러짐에 대하여 - 정호승 나뭇가지가 바람에 뚝뚝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를 물고 가 집을 짓는 새들을 위해서다 만일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나뭇가지로 살아남는다면 새들이 무엇으로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내가 부러지지 않고 계속 살아남기만을 원한다면 누가 나.. 정호승* 2009.07.22
허물 - 정호승 * 허물 - 정호승 느티나무 둥치에 매미 허물이 붙어 있다 바람이 불어도 꼼작도 하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다 나는 허물을 떼려고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죽어 있는 줄 알았던 허물이 갑자기 몸에 힘을 주었다 내가 힘을 주면 줄수록 허물의 발이 느티나무에 더 착 달라붙었다 허물은 허물.. 정호승* 2009.07.22
다시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 다시 벗에게 부탁함 - 정호승 벗이여 소가 가죽을 남겨 쇠가죽 구두를 만들듯 내가 죽으면 내 가죽으로 구두 한 켤레 만들어 어느 가난한 아버지가 평생 걸어가고 싶었으나 두려워 갈 수 없었던 길을 걸어가게 해다오 벗이여 내 가죽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가죽소파 하나 만들어 저.. 정호승* 2009.07.21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 부치지 않은 편지 -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 정호승* 200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