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일서정(夏日抒情) - 오탁번 * 하일서정(夏日抒情) - 오탁번 혼자 있을 때 내의와 양말을 빨면 환한 바깥에다 내다 걸기 뭣해서 화장실 벽에 숨겨놓듯 걸어놓는다 비알밭 쥐옥수수도 메뚜기처럼 살이 오르는 한여름 어느 날 감곡에서 놀러온 여류시인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빨래를 걷어서 들고 나온다 -빨래가 햇볕.. 좋아하는 詩 2012.08.13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世上事)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 대는 일엔 희.. 좋아하는 詩 2012.08.13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 엘리자베스 배릿 브라우닝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난 저 여자를 사랑해 미소 때문에 예쁘기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나와 꼭 어울리기 때문에 어느 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한 .. 좋아하는 詩 2012.06.22
우리는 매일매일 - 진은영 * 우리는 매일매일 - 진은영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 좋아하는 詩 2012.06.22
수련(睡蓮) - 심창만 * 수련(睡蓮) - 심창만 선정(禪定)은 조는 것 풀 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 좋아하는 詩 2012.06.12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 마디 말 - 정희성 *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한 마디 말 - 정희성 한 처음 말이 있었네 채 눈뜨지 못한 솜털 돋은 생명을 가슴속에서 불러내네 사랑해 ! 아마도 이 말은 그대 귓가에 닿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다가 괜히 나뭇잎만 흔들고 후미진 내 가슴에 돌아와 혼자 울겠지 사랑해 때늦게 싹이 튼 이 말이 어.. 좋아하는 詩 2012.06.12
와온臥溫 가는 길 - 곽재구 * 시 - 곽재구 눈 오시네 와온 달천 우명 거차 쇠리 상봉 노월 궁항 봉전 율리 파람바구 선학 창산 장척 가정 반월 쟁동 계당 당두 착한 바닷가 마을들 등불 켜고 고요히 기다리네 청국장에 밥 한술 들고 눈 펄펄 오시네 서로 뒤엉킨 두 마리 용이 빚은 순금빛 따스한 알 하나가 툭 얼어붙은.. 좋아하는 詩 2012.06.07
안개속에 숨다 - 류시화 * 안개속에 숨다 - 류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 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좋아하는 詩 2012.05.18
떨어진 꽃 하나를 줍다 - 조창환 * 떨어진 꽃 하나를 줍다 - 조창환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워 들여다본다 밟히지 않은 꽃잎 몇 개는 나긋나긋하다 꽃잎 하나를 따서 가만히 비벼보면 병아리 심장 같은 것이 팔딱팔딱 숨쉬는 소리 따뜻하고, 손가락 끄트머리가 아득하다 안개 속의 섬처럼, 혹은 호수에 잠긴 절 그림자처럼 떨.. 좋아하는 詩 2012.05.18
그리운 이 그리워 - 오세영 * 그리운 이 그리워 - 오세영 그리운 이 그리워 마음 둘 곳 없는 봄날엔 홀로 어디론가 떠나 버리자. 사람들은 행선지가 확실한 티켓을 들고 부지런히 역구를 빠져 나가고 또 들어오고, 이별과 만남의 격정으로 눈물짓는데 방금 도착한 저 열차는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 실어온 .. 좋아하는 詩 201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