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의 노래 - 복효근 * 춘향의 노래 - 복효근 지리산은 지리산으로 천 년을 지리산이듯 도련님은 그렇게 하늘 높은 지리산입니다 섬진강은 또 천 년을 가도 섬진강이듯 나는 땅 낮은 섬진강입니다 그러나 또 한껏 이렇지요 지리산이 제 살 속에 낸 길에 섬진강을 안고 흐르듯 나는 도련님 속에 흐르는 .. 좋아하는 詩 2011.12.12
겨울의 춤 - 곽재구 * 겨울의 춤 - 곽재구 첫눈이 오기 전에 추억의 창문을 손질해야겠다 지난 계절 쌓인 허무와 슬픔 먼지처럼 훌훌 털어내고 삐걱이는 창틀 가장자리에 기다림의 새 못을 쳐야겠다 무의미하게 드리워진 낡은 커튼을 걷어내고 영하의 칼바람에도 스러지지 않는 작은 호롱불 하나 밝혀두어야.. 좋아하는 詩 2011.12.08
달이 자꾸 따라와요 - 이상국 * 달이 자꾸 따라와요 - 이상국 어린 자식 앞세우고 아버지 제사 보러 가는 길 ㅡ 아버지 달이 자꾸 따라와요 ㅡ 내버려 둬라 달이 심심한 모양이다 우리 부자가 천방둑 은사시나무 이파리들이 지나가는 바람에 솨르르솨르르 몸 씻어 내는 소리 밟으며 쇠똥 냄새 구수한 판길이 아.. 좋아하는 詩 2011.12.05
청학동에선 길을 잃어도 청학동이다 - 이원규 * 청학동에선 길을 잃어도 청학동이다 - 이원규 울지 마라 길 위에서 길을 잃어도 그 또한 길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리산은 그대로 여기 이 자리에 있었으며 아주 먼 훗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섬진강은 마냥 이대로 유장하게 흐를 것이니 너무 촐싹거리며 쟁쟁 바둥거리.. 좋아하는 詩 2011.12.02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양성우 *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는 숲 그늘.. 좋아하는 詩 2011.11.28
저녁은 모든 희망을 - 이영광 * 저녁은 모든 희망을 - 이영광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가 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 좋아하는 詩 2011.11.25
애월(涯月)에서 - 이대흠 * 애월(涯月)에서 - 이대흠 당신의 발길이 끊어지고부터 달의 빛나지 않는 부분을 오래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른 마음은 초름한 꽃만 보아도 시려옵니다 마음 그림자 같은 달의 표면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발자국이 있을까요 파도는 제 몸의 마려움을 밀어내며 먼 곳에서 옵니다 .. 좋아하는 詩 2011.11.14
달빛 선원의 황금사자 - 최동호 * 달빛선원의 황금사자 - 최동호 막다른 계곡에 부딪쳐 용틀임하는 거친 바람이 큰 나무 둥치를 쓰러트릴 듯이 휘감다가, 칠성판에서 튀어오른 뼈다귀들 불티 가라앉히는 소리 들리면 지척에서 대들보 갈라지는 소리 혼불이 빠져나가듯 하얗게 옹이진 나뭇결을 발라낸다 돌아누우면 무.. 좋아하는 詩 2011.11.07
오어사(吾魚寺)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 황동규 * 오어사(吾魚寺)에 가서 원효를 만나다 - 황동규 1 오어사에 가려면 포항에서 한참 놀아야 한다. 원효가 친구들과 천렵을 즐기던 절에 곧장 가다니? 바보같이 녹슨 바다도 보고 화물선들이 자신의 내장을 꺼내는 동안 해물잡탕도 먹어야 한다. 잡탕집 골목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 좋아하는 詩 2011.11.07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박형준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 박형준 그 젊은이는 맨방바닥에서 잠을 잤다 창문으로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였다 가을에 간신히 작은 열매가 맺혔다 그 젊은이에게 그렇게 사랑이 찾아왔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그는 그때까지 맨방바닥에서 사랑을 나눴다 지하 방의 .. 좋아하는 詩 2011.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