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 * 사과를 먹으며 -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 좋아하는 詩 2013.01.31
시 -어머니학교10 - 이정록 * 시 -어머니학교10 - 이정록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업은 애기를 왜 삼 년이나 찾는지 아냐? 세 살은 돼야 엄마를 똑바로 찾거든. 농사도 삼 년은 부쳐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며 이 빠진 옥수수 잠꼬대 소리가 들리지.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 좋아하는 詩 2013.01.20
저녁 산책 - 배창환 * 저녁 산책 - 배창환 아들아, 너와 나의 인연은 참으로 깊다. 언젠가 신점(神占)으로 소문난 월항 할매 찾아 내 손바닥을 펼쳤을 때, 너는 그 여자의 확언에 의해 내게 운명적으로 점지될 생명이었다. 나는 너를 여기 이 앵무동 마을까지 데리고 왔다. 이 마을은 내가 꿈에도 날아와 보지 .. 좋아하는 詩 2013.01.02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 새벽에 용서를 - 김재진 그대에게 보낸 말들이 그대를 다치게 했음을. 그대에게 보낸 침묵이 서로를 문 닫게 했음을. 내 안에 숨죽인 그 힘든 세월이 한 번도 그대를 어루만지지 못했음을. * * 토닥토닥 나는 너를 토닥거리고 너는 나를 토닥거린다. 삶이 자꾸 아프다고 말하고 너는 자꾸 .. 좋아하는 詩 2012.12.29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 좋아하는 詩 2012.12.26
차가운 잠 - 이근화 * 차가운 잠 - 이근화 꿈속에서 세차게 따귀를 얻어맞았다 새벽이 통째로 흔들렸고 흔들린 새벽의 공기를 되돌려놓기 위해 전화벨이 울렸다 나의 눈은 동그란 벽시계에 나의 눈의 병상의 엄마에게 긴 복도를 따라 걷지만 복도와 두 눈을 맞출 수는 없다 일주일 사이 꽃이 졌다 여기저기 .. 좋아하는 詩 2012.12.04
첫눈 - 김진경 * 첫눈 - 김진경 길바닥에까지 전을 벌려 놓은 마포 돼지껍데기집 빨갛게 달아오른 연탄화덕을 끼고 앉아 눈을 맞는다 어허 눈이 오네 머리칼 위에 희끗 희끗 눈을 얹은 윤가가 큰 눈을 뜬다 대장간에 말굽 갈아 끼러 왔다가 눈을 만난 짐말들처럼 술청 안의 사내들이 술렁댄다 푸르륵 푸.. 좋아하는 詩 2012.12.04
화엄광주(華嚴光州) - 황지우 * 화엄광주(華嚴光州) - 황지우 하늘과 땅을 溶接하는 보라色 빛 하늘의 뿌리 잠시 보여준 뒤 환희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帝釋天, 저 멀리 구름장 밑으로 우레 소리, 도라무깡처럼 우르르르르 굴러오네 이윽고 비가 빛이 되고 願을 세우니, 거짓말이나니 희망은 作用하는 거짓말이므로 .. 좋아하는 詩 2012.11.17
아침 - 문태준 * 아침 - 문태준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처럼 한번 또 한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번 출렁했다 출렁출렁.. 좋아하는 詩 2012.10.31
상처가 더 꽃이다 - 유안진 * 상처가 더 꽃이다 - 유안진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 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나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붙었는지 주먹만큼 굵다란.. 좋아하는 詩 2012.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