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려면 - 정호승 * 꽃을 보려면 - 정호승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어머니를 만나려면 들에 나가 먼저 봄이 되어라 꽃씨 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평생 버리지 않았던 칼.. 정호승* 2014.02.11
첨성대 - 정호승 * 첨성대 - 정호승 할머님 눈물로 첨성대가 되었다 일평생 꺼내보던 손거울 깨뜨리고 소나기 오듯 흘리신 할머니 눈물로 밤이면 나는 홀로 첨성대가 되었다 한 단 한 단 눈물의 화강암이 되었다 할아버지 대피리 밤새 불던 그믐밤 첨성대 꼭 껴안고 눈을 감은 할머니 수놓던 첨성대의 등.. 정호승* 2013.12.12
달팽이 - 정호승 * 달팽이 - 정호승 집을 등에 지고 가는 그를 밟지 마시라 살짝만 밟아도 으깨지는 그를 그대로 두시라 그는 집을 별이라고 생각하고 별을 가볍다고 생각할 때가 있으므로 서울역 대합실이든 지하철 통로이든 기어가거나 걸어가거나 누구나 가는 길의 끝은 다 눈물의 끝이므로 봄비가 오.. 정호승* 2013.11.04
여행 - 정호승 * 여행 - 정호승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아직도 사람이 여행할 수 있는 곳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떠나서 돌아오지 마라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쪼아 먹힌 나의 심장이 먼지가 .. 정호승* 2013.11.04
초상화로 내걸린 법정스님 - 정호승 * 초상화로 내걸린 법정스님 - 정호승 눈 오는 날 거리를 걷다가 초상화를 가르쳐주는 화실 앞을 지나다가 초상화로 내걸린 법정스님을 만났다 서울에 내리는 첫눈을 바라보는 법정스님의 맑은 눈이 눈에 젖는다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라 지금이 바로 그때다 하나가 필요하면 하나.. 정호승* 2013.11.01
폭풍 - 정호승 * 폭풍 - 정호승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은 옳지 않다 폭풍을 두려워하며 폭풍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옳지 않다 스스로 폭풍이 되어 머리를 풀고 하늘을 뒤흔드는 저 한 그루 나무를 보라 스스로 폭풍이 되어 폭풍 속을 나는 저 한 마리 새를 보라 은사시나뭇잎 사이로 폭풍이 휘몰.. 정호승* 2013.07.17
후회 - 정호승 * 고래를 위하여 - 정호승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 정호승* 2011.11.01
설사하다 - 정호승 * 설사하다 - 정호승 아침에 부석사 목어를 구워먹다 저녁에 천은사 목어를 삶아먹다 한밤에 아무도 몰래 운주사 목어를 데쳐먹다 다음날 아침에도 내소사 목어를 구워먹고 선운사 목어를 삶아먹고 송광사 목어를 회떠먹다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나라 산사의 목어란 목어는 다 회떠먹고 .. 정호승* 2011.09.26
사랑에게 - 정호승 * 사랑에게 - 정호승 나의 눈물에는 왜 독이 들어있는가 봄이 오면 봄비가 고여 있고 겨울이 오면 눈 녹은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는 줄 알았더니 왜 나의 눈물에는 푸른 독이 들어 있는가 마음에 품는 것마다 다 독이 되던 시절이 있었으나 사랑이여 나는 이제 나의 눈물에 독이 없기를 바.. 정호승* 2011.04.15
폐사지처럼 산다 - 정호승 * 폐사지처럼 산다 - 정호승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묻지 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 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번 세운 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박혀 나뒹구.. 정호승* 201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