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자화상 - 신현림

효림♡ 2008. 6. 10. 09:17

* 자화상 - 신현림

울음 끝에서 슬픔은 무너지고 길이 보인다// 

울음은 사람이 만드는 아주 작은 창문인 것// 

창문 밖에서

한 여자가 삶의 극락을 꿈꾸며

잊을 수 없는 저녁 바다를 닦는다 *   

* 김용택[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 사랑이 올 때  

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 *

* 문태준엮음[포옹,당신을 안고 내가 물든다]-해토 

 

* 침대를 타고 달렸어
누구나 꿈속에서 살다 가는 게 아닐까
누구나 자기 꿈속에서 앓다 가는 거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누에게 고치를 잣듯
포기 못할 꿈으로 아름다움을 얻는 거

슬프고, 아프지 않고
우리가 어찌 살았다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찌 회오리 같은 인생을 알며
어찌 사랑의 비단을 얻고 사라질까

 

* 당신의 참 쓸쓸한 상상

더도 말고 보름간만

호텔 룸서비스를 받으며

호사스런 식사를 하겠다고

아이스크림같이 녹아 내리도록

그녀 품에 안겨 애무를 받겠다고

뜨거운 함박눈 속 바위처럼

다만 묻히고 싶다고

더러워진 와이셔츠, 고뇌의 쇠사슬은

죄다 풀어

태풍 부는 해안처럼 울고 싶다고

어쨌거나 제 임자도 있으면서

엉큼한 당신, 쓸쓸한 당신

육신을 벗으며 몸부림치는 육신

어리석고 서글픈 우리네 육신 *

 

* 황사바람 부는 날

황사바람이 불어 가는 세상은 이승이 아닌 듯 기묘하다
오늘 내 집은 이 바람 속인 것만 같다

저녁 5시의 거리엔 행인들이 없고
술잔 속에도 황사 바람이 분다
죽음의 흙먼지가 달콤해질 때까지
식탁 위로 구워져 나온 물고기
흰 버선처럼 선이 너무 고와 먹을 수가 없지
깊은 맛을 우려낸 쓸쓸함처럼
알탕이 끓고 푸른 배춧잎에 맺힌
물방울에 그리운 모습들이 비친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함께 한 저녁 식사는
이 저녁에만 느낄 따뜻함일지 모른다
얼굴에 젖는 축축한 어둠마저 훈훈하게 느껴지는 건
이 순간뿐일지 모르지

두려움이 날 살게 하는 힘이라 느끼자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바람 부는 술잔에 초저녁 흰 달이 뜬다 *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 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
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
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해를 보면 해를 닮고
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
 

* 오광수엮음[시는 아름답다]-사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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