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자화상 - 서정주

효림♡ 2008. 6. 10. 09:18

* 自畵像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 서정주시집[안 끝나는 노래]-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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